[책갈피 속의 오늘]1942년 2차대전 포연속 연합국 선언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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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적이고 잔인한 적들에 맞서 공동 투쟁한다. 완전한 승리를 위해 사용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한다. 단독 강화나 휴전은 있을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월 1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워싱턴에서 이 같은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한다. 26개국 대표가 서명한 이른바 ‘연합국 선언(De-claration by United Nations)’이다.

선언문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추축국(Axis Powers)’에 맞서는 진영을 ‘연합국(United Nations)’이라 칭했고 이는 3년여 뒤 출범한 국제평화기구 유엔의 명칭이 됐다.

처칠은 이에 앞선 1941년 12월 22일 대서양을 건너 워싱턴에 도착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지 2주 만이었다. 처칠은 3주 동안 미국에 머무르며 루스벨트와 추축국에 대항하기 위해 단일 전선을 만들 것을 논의했다.

불같이 화를 잘 내고 눈물도 숨기지 않았던 호방한 성격의 처칠, 감정을 숨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냉정한 성격의 루스벨트.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지극히 계산적이었던 루스벨트도 자신을 ‘보스’로 높여 주고 스스로는 ‘부관’이라며 몸을 낮춘 처칠의 저돌적인 외교에 무너졌다. 처칠의 유명한 ‘알몸 외교’도 이 당시의 일화.

백악관에서 머물던 처칠은 목욕을 마치고 벌거벗은 채로 거실을 거닐고 있었다.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오던 루스벨트가 처칠의 알몸을 보고 당황해 나가려 하자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각하, 보다시피 나는 아무 것도 감출 것이 없습니다.”

유엔의 모태가 된 ‘연합국’ 명칭도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나왔다. 1815년 워털루 전투 당시 반(反)나폴레옹 진영을 연합국(united nations)이라고 표현한 바이런의 시구절을 처칠이 인용하자 루스벨트가 이를 반(反)추축국 동맹의 명칭으로 정식 제안한 것.

이후 2차대전 승전국 연합으로 유엔이 태어났고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은 60여 년 전의 승전국에 한정돼 있으며 당시 추축국을 적국으로 규정한 조항(enemy clause)도 유엔헌장에 여전히 남아 있다.

오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정식 임기를 시작한다. 반 총장에게 주어진 숙제 중 하나가 유엔의 2차대전 유산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개혁하는 과제다. 2차대전 패전국의 식민지 출신인 반 총장이 과연 조정력을 제대로 발휘할지 궁금하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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