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2년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 개관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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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 뉴욕 증시가 대폭락했다.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고 실업자도 넘쳐났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시작이었다. 미국 경제는 1908년 수준으로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암울한 시기일수록 희망도 빛난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 2세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록펠러센터’라는 희망의 싹을 심었다. ‘평범한 뉴요커도 큰 부담 없이 고품격의 대중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의 시도는 성공했다. ‘대공황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수천 명의 인파가 라디오시티 뮤직홀의 개관 행사에 몰렸다.’

히스토리채널이 회상하는 1932년 12월 27일의 모습. 록펠러센터의 부속 건물 가운데 하나인 라디오시티 뮤직홀이 위용을 드러냈다.

훗날 영화 ‘오즈의 마법사’로 유명해진 배우 레이 볼저와 현대무용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마사 그레이엄이 이날 행사에 등장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라디오시티 뮤직홀은 독특한 건물 디자인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음악당이나 대극장이라면 흔히 있을 법한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장식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유리와 알루미늄을 이용한 기하학적 장식이 특징이었다.

규모도 단연 최고였다. 지는 해를 형상화한 무대는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각각 44m, 20m로 미니 축구장만 했다. 무대 엘리베이터도 당시로서는 최첨단이어서 미 해군이 수송기 개발에 응용할 정도였다. 개관 당시 좌석은 5933석으로 세계 최대의 실내극장으로 기록됐다.

디자인과 규모의 하드웨어도 뛰어났지만 공연물과 출연 배우 같은 소프트웨어는 더욱 화려했다. 프랭크 시내트라, 엘라 피츠제럴드, 빌 코스비 등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예술인이 이곳을 거쳐 갔다.

요즘도 매년 에미상, 토니상, MTV 비디오 뮤직상 시상식이 열리고 있어 대중 예술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또 언제 가더라도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뉴욕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됐다.

라디오시티 뮤직홀의 홈페이지는 70여 년의 역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라디오시티 뮤직홀은 암울한 시절에 밝게 빛나는 횃불이었다. 첫날 공연 이후 수많은 유명 인사를 끌어들이는 자석이었다. 스타는 이곳에서 빛이 났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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