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독에 빠졌다 문화를 마신다…‘술’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 입력 2006년 12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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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를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바텐더’의 한 장면.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를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바텐더’의 한 장면.
회사원 한지원(26) 씨는 최근 ‘술독’에 빠져 산다. 직접 술을 마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술에 관련된 다양한 지식을 알아 가는 데 푹 빠져 산다는 뜻이다. 와인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다니며 라벨 보는 법, 라벨의 디자인, 와인 색깔, 향을 연구한다. 주말이면 와인 동호회 사람들을 만난다. 한 씨는 “술 마시는 것은 싫어하지만 위스키와 전통주까지 다양한 술에 대해 배우는 일이 취미가 됐다”고 말했다.

○ 술 마시지 않고 술 즐기기?

‘술’이 대중문화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술 문화란 말이 예전에는 ‘술자리 문화’를 뜻했다면 요즘은 술과 관련된 복합적인 문화 활동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은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술 정보 검색과 커뮤니티 참여 등 음주 외적인 문화행위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술과 관련된 문화요인들을 디지털 콘텐츠화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과 강원대, 한국외국어대 산학협력단은 한국 전통주를 디지털콘텐츠로 만들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역사 속 술과 관련된 모든 문화 요소들을 데이터베이스(DB)화한 것. 전통주 빚기뿐 아니라 술과 관련된 의례, 각종 문헌 속 술 문화, 그림과 문학 속의 술 이야기, 전통음악 속의 술 관련 음원 등 역사 속 술 문화 콘텐츠를 집대성해 3D캐릭터, 시나리오, 동영상,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으로 만들었다. 더불어 고대 이집트부터 근대까지 주요 포도주 생산 국가의 와인 제조법, 로마인들의 와인 사랑, 와인과 셰익스피어 등 유럽문화 속 와인의 의미를 ‘이야기 은행화’했다.

한국외국어대 임영상 교수는 “다도(茶道)처럼 요즘엔 술도 마시는 행위 자체보다는 관련 문화를 향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감정을 극명히 표출시키는 작용을 하는 술 안에는 요즘 대중문화에서 중시하는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新 술 문화=기호의 소비학

올해 대성공을 거둔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비롯해 전통주를 생산하는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 ‘명가의 술’, 칵테일을 소재로 한 ‘라임 리미트’, ‘칵테일 25시’, 바텐더의 삶을 그린 ‘Bartender’ 등의 인기도 ‘마시지 않고 즐기는’ 문화를 보여 준다.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의 이준익 감독도 차기작으로 술을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국내 대형 서점에는 와인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한손에 잡히는 와인’, ‘올 댓 와인’ 등 현재 교보문고에 진열된 와인 관련 서적만 50종류가 넘는다. 대학생 박종규(24) 씨는 “이제는 술이 문화 콘텐츠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20∼30대 여성에게 잘 나타난다. 와인 동호회 이진백 회장은 “1만5000여 회원 중 상당수가 젊은 여성들”이라며 “이들은 술 마시기보다는 와인의 품종 향 색깔 맛에 대한 견해를 나누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문화 소비의 기호화’ 현상으로 해석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술은 하나의 지식, 패션, 트렌드가 되고 있는데 이는 술을 마시기보다 하나의 이미지, 기호로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며 “또한 술에 투영된 이미지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이와 차별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감소했으며 즐거운 기호품이라는 의견이 증가했다. 한국음주문화센터 허영혜 연구원은 “이 같은 트렌드가 자칫 ‘음주를 하려면 뭔가 고급화된 소비를 해야 한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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