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연예인 권력’ 1부 - 연예인과 정치

  • 입력 2006년 12월 19일 1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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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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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 좌우되는 한국정치, 연예인 영향력 막강”

유명 연예인은 흔히 ‘스타’에 비유된다. 말 그대로 대중의 머리 위에 높이 떠서 ‘별’처럼 영롱한 빛을 뿜어낸다.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 그들의 영향력은 각 분야에서 실로 막강하다. 연예계는 ‘PD시스템’에서 ‘스타시스템’으로 바뀐 지 오래다. 스타 모시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그들이 창출하는 경제적 부가가치도 무시하기 어렵다. 한 영화배우로부터 파생된 수익이 자그마치 3조 원에 육박한다. 정치권도 연예인의 영향력에 들어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의 연예인 모시기 경쟁은 더욱 뜨거워진다. 정치인은 연예인을 앞세워 쉽게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덧칠한다. 어떤 연예인과 합체하느냐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대사회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연예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부분은 거의 없다. 과연 이들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동아닷컴은 네 차례에 걸쳐 각 분야에 괴력을 발휘하는 ‘연예인 권력’의 실체를 규명해봤다. <편집자 주>

정한용, 심현섭, 명계남, 문성근…. 이들의 공통점은 ‘정치연예인’이란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정한용은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캠프에서 활약했고, 명계남·문성근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지원해 당선시켰다. 반면 이회창 후보를 보좌한 심현섭은 좌절의 고배를 마셨다.

2007년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어떤 연예인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행동대장’ 역할을 자처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연예인과 정치 커넥션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의 유세장에 연예인이 등장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정치인은 몰라도 연예인이 누군지는 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일각에서는 정치인이 내놓은 정책이 아니라, 그의 옆에 서있는 연예인의 이미지에 표를 던진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나 문화계는 “꼭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국회 문광위 소속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연예인의 지명도를 이용해 자신을 알리고 싶은 건 정치인들의 인지상정”이라며 “정치인이 자신이 지향하는 정책과 성향에 공감하는 연예인과 함께하려는 건 나무랄 게 없다”고 옹호했다. 하재봉 문화평론가도 “정치와 대중 사이가 가깝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연예인들을 통해 대중에게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라며 “대중 정치에서는 초창기부터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고 두둔했다. 반면 중앙대 최정일 연극영화과 교수는 “사람들을 모으는 데 연예인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며 “연예인의 이미지를 자신들의 표로 결부시키는 폐단을 유발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 “연예인, 선거에 영향을 미치나?”
=이에 대해 하 평론가는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고 단언했다. 그는 2002년 대선을 언급하며 “당시 노무현 캠프에서 활동한 문성근 씨의 영향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밑바닥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걸 실제로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최 교수도 “선거에 효과가 있으니까 정치인들이 연예인을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며 “국민들은 연예인을 우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정치성향이나 투표 연령층에 상관없이 유세장에 모여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계량하기는 참 어렵다”면서도 “TV 등 미디어정치가 활성화되면서 합동유세가 없어졌다. 개별적으로 유세할 때 대중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어 유권자를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연예인 권력의 최정점 ‘폴리테이너’
= 폴리테이너(politainer)는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을 의미한다. 미국 햄린대학 정치학과 데이비드 슐드 교수가 1999년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이미지 정치 현상’을 대변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다. 정책보다는 후보자의 이미지가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예단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폴리테이너’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연예인들이 정치권에 진출해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가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까지 올랐고, 최근에는 영화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외에 ‘용서받지 못한 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열연한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993년 그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의 소도시인 카멜시의 시장에 당선됐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정계에 진출하는 연예인들은 눈에 띄게 많지만 성공한 ‘폴리테이너’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TBC 동양방송에서 활약했던 탤런트 홍성우가 첫 ‘폴리테이너’다. 그는 1978년 연예인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후 3선까지 지냈다. 1950~70년대 초반까지 영화계에서 액션스타로 활약했던 이대엽은 11대 국회에 진출한 후 내리 세 차례나 당선됐다. 이들이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로 거론된다. 이외 영화배우 강신성일·최무룡을 비롯해 탤런트 이낙훈·이순재·최불암·강부자·정한용·신영균, 코미디언 이주일, 가수 최희준 등 많은 연예인들이 국회에 진출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왜 그들은 ‘반짝’하고 만 것일까. 최 교수는 “정치인들은 연예인들의 정치역량을 높이 사기보다는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려고 할 뿐”이라며 “이 같은 인식이 팽배한 현 정치 상황에서는 연예인들이 정치에 진출해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성공한 ‘폴리테이너’가 나오기 위해서는 “서로 존중해주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각 분야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정치인들은 연예인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반면 박 의원은 “대학교수 등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정치에 진출해서 다 성공한 건 아니다”며 “직업으로 성공 여부를 재량하기는 힘들다. 자신이 일했던 분야의 경험을 살려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면 그만”이라고 반박했다.


▲2007 대선, 연예인 영향력은?
= 최근 치러진 굵직한 선거를 보면 내년 대선에서 연예인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볼 수 있다. 2002년 대선은 ‘이미지 정치’의 정점을 보여줬다. 노무현 후보는 ‘기타 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TV에 실시간으로 내보내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에 질세라 이회창 후보는 유세장에서 춤판을 벌이며 ‘젊은 이미지’ 홍보에 주력했다. 올 5·31 지방선거는 어떤가. 단적인 예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오세훈·강금실은 ‘바람·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감성 대결’을 펼쳤다. 정책대결이 실종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감성 코드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내년 대선도 ‘감성ㆍ이미지’가 중심 코드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그 전면에는 연예인이 있다. 벌써부터 유명 연예인을 모시려는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한 대선 캠프에서는 캠프에 합류시킬 연예인들의 명단을 뽑아놓고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하 평론가는 “우리나라는 정당정치가 기틀을 잡지 못했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좌우된다”며 “‘감성정치’에서는 연예인들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지금은 예전처럼 ‘PD시스템’이 아니라 ‘스타 시스템’이 정착돼 ‘스타’가 권력화 돼 있다. 그들이 선거에 나선다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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