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기타 가방메고 오디션? 이젠 노디션 시대

  • 입력 2006년 10월 27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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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한 살 때부터 배운 기타. 하지만 지금은 왠지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화면 위로 흐르는 자막. 그리고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을 전자 기타로 연주하는 영상이 오버랩된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광고는 대구 경일여고 1학년 조래은(17·여) 양을 모델로 내세웠다. 유명인도 아닌 조 양의 광고 출연은 바로 자신이 올린 기타 연주 동영상 덕분이다.

○ 나의 연주? 노디션으로 검증받다!

에릭 클랩튼을 좋아하고 드럼 기타 연주가 취미인 이 10대 소녀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올해 여름 경. 전자기타로 잉베이 맘스틴의 '파 비욘드 더 선', '딥 퍼플'의 '번' 같은 곡들을 연주, 동영상으로 촬영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자 한 편당 평균 5000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누리꾼들의 지지를 받은 조 양

조 양은 "'느낌을 억제하지 말라' '비브라토(기타 줄을 움직여 떨리는 소리를 내는 기술)에 신경쓰라'는 등 수 많은 지적을 받아 처음엔 상처도 입었지만 많은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조 양의 '사계' 동영상은 게시된 지 5일 만에 4만 건이 넘는 조회수, 300여개의 댓글을 기록하고 있다.

영화음악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올린 양승구(18) 씨는 아예 다음 사이트 내 'OST 치는 남자'란 자신의 코너를 갖고 있다. 양 씨는 "피아노 연주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영화 '왕의 남자'에 수록된 '반허공'이란 곡을 올렸다"며 "미니홈피 하루 방문객이 50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얻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어깨에 기타 가방을 매고 홍대 록 클럽을 돌아다니며 오디션을 보던 아마추어 뮤지션들. 이제는 자신의 키 만한 기타 가방 대신 컴퓨터와 동영상 편집기, 그리고 웹 캠을 준비한다. 그리고 클럽주인이 아닌 3000만 누리꾼들을 상대로 자신의 연주 동영상을 인터넷에 게시한다. 이른바 '노디션(Net+Audition)' 시대가 도래했다.

'노디션' 문화는 2년 전 인터넷 음악 연주 전문 사이트 '뮬'을 중심으로 생겨났으며 현재는 '엠군', '판도라TV' 같은 동영상 전문 사이트와 네이버의 '네이버 플레이', 다음의 'TV 팟' 등 포털 사이트 내 동영상 게시판에까지 확산됐다. 다음에서는 18일부터 '제 1회 네티즌 동영상 음악회'를 개최, 10일 만에 200여 편의 기타, 피아노 등의 아마추어 연주 동영상이 게시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스타는 쉽고 뮤지션은 멀다?

노디션 문화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계기는 바로 '캐논 기타 동영상' 한 편으로 주목을 받은 임정현(22) 씨. 올해 초 미국의 동영상 커뮤니티 '유튜브'에 '캐논'을 록 버전으로 연주한 동영상을 게시, 미국 뉴욕타임스에 인터뷰가 실릴 정도로 주목을 받았으며 8월 국내에 소개되자마자 '벼락 스타' 자리에 올랐다. 이후 '제 2의 임정현'을 꿈꾸는 많은 10~20대의 젊은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동영상 사이트에 자신의 연주 동영상을 올리며 누리꾼들에게 평가를 받고 있는 것.

홍대 앞 클럽 '롤링홀'의 김천성 대표는 "과거만 해도 한정된 공간, 관객을 대상으로 장기를 보여주었다면 이제는 전국의 누리꾼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받는 것"이라며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기도 쉽다"라고 말했다.

CD문화를 MP3 시대로 바꾼 인터넷이 이제는 오디션 문화까지 바꾸는 분위기다.

그러나 음악계 반응은 "아직은 설익었다"란 반응이 두드러진다. 대부분 이들의 연주곡이 자작곡이 아닌 유명 히트곡 위주고 실제 연주에 대한 시비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임정현 씨는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실제 프로 무대에서 입지를 굳힌 사례는 아직 드물다"며 "하루아침에 유명해지려는 의도보다 실력을 쌓기 위한 방법으로 '노디션' 문화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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