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간 넘어 놀이마당으로 가야죠”…개관 1주년 국립중앙박물관

  • 입력 2006년 10월 2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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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아 교수(왼쪽)와 서현 교수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며 ‘박물관의 미래상’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이보아 교수(왼쪽)와 서현 교수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며 ‘박물관의 미래상’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제작 과정에서 원나라 기술이 반영됐다는 이유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 뒷자리로 밀린 경천사 10층석탑.
제작 과정에서 원나라 기술이 반영됐다는 이유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 뒷자리로 밀린 경천사 10층석탑.
한 어린이가 국립중앙박물관 내 ‘어린이 박물관’에서 모형 금관을 쓰고 즐거워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 어린이가 국립중앙박물관 내 ‘어린이 박물관’에서 모형 금관을 쓰고 즐거워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 어떤 박물관도 한 번 이상 가지 않는 서현 한양대 건축과 교수. 큐레이터로 미국에 머물 당시 넉 달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한 이보아 추계예대 문화산업대학원 아트비즈니스, 교수. 햇살이 따뜻한 10월의 어느 날 오후, 두 사람은 28일로 개관 1주년을 맞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산책했다.》

○ 과제는 한국적 특수성? 세계적 보편성?


1층 역사관을 빠져나오자 경천사 10층 석탑이 관객을 압도한다. 원나라의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는 경천사 10층석탑 주변은 그 어떤 유물보다 관람객으로 북적거렸다.

▽이보아=유물 배치를 보면 박물관이 내세운 ‘세계화’에 많이 다가가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예를 들면 2층에는 중앙아시아관이 생겼고 특별전시전 8개 중 2개가 해외 유물전이었죠.

▽서현=그렇지만 저 경천사 10층석탑을 보면 박물관이 내세우는 세계화나 미래지향적이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는군요. 원나라의 기술이 많이 들어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다음, 1층 중앙에 장식하려고 복원한 경천사 10층석탑은 박물관의 맨 뒤 구석으로 물러나게 됐어요.

▽이=아쉬운 일이에요. 저 석탑을 복원하는 데 10년이 걸렸어요. 복원 자체가 세계적인 문화재감이라고 극찬을 받는 유물인데….

▽서=그러니까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면 감추고 싶다는 그런 민족주의가 작용을 한 것이 아닐까요(박물관 측은 석탑이 뒤로 밀려난 이유를 우리 유물을 대표하기 어렵다는 자체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

매일 3000여 명의 학생이 박물관을 찾는다. 전시관 주위의 공간에서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이=지나치게 시끄러워요.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왜 박물관에서 통제하지 않을까요. 소음은 유물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

▽서=동의하기 어렵네요. 한국인의 민족성에는 장터 기질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앉아서 옆 사람과 잡담을 주고받으며 즐기는 문화죠. 그런데 서구인의 기질에 맞게 설계된 박물관 양식을 그대로 가져오니까 박물관과 관객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거죠.

▽이=관람 매너를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박물관은 보편적인 제3의 장소예요. 한국만의 특수성을 강조한다면 외국 관람객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서=글쎄요.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면 그 국가의 색깔이 확실히 나타나야 할 것 같은데요. 차라리 우리 식의 흥겹고 시끌벅적한 새로운 공간 연출을 고려했으면 어땠을지…. 풍물도 하고 춤도 추고 한국적 정서를 마음껏 즐기는 그런 공간을 만들자는 거죠.

○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박물관을 기다리며

▽서=내가 박물관을 처음부터 싫어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오면 생기가 없고 재미가 없어요. 애들한테 공짜 표를 줘도 오지 않을 걸요. TV 드라마보다 재미가 없으니까.

▽이=박물관과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이 많이 부족해요. 와서 보기만 하니까 아무래도 재미없죠. 흥미가 떨어지고….

▽서=관람객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내는가, 그게 미래 박물관의 과제가 되겠군요.

▽이=현대 모든 박물관의 새로운 과제죠. 20세기 박물관이 풍부한 컬렉션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면 21세기에는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죠. 유럽의 경우 진품과 흡사하게 만들어 관람객이 만질 수 있게 한 ‘터치 갤러리’ 방식이 도입됐어요. 관람객이 구경꾼이 아니라 서비스를 누리는 존재로 인식되는 박물관이 되어야겠죠.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월평균 20만명 관람… 외국인은 드문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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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국립중앙박물관의 월 관람객은 20만 명을 기준으로 증감을 보이고 있다. 3월과 9월에 관람객이 급감하는 것은 주 관람객인 학생들의 새학기가 시작되기 때문. 박물관 측은 “방학이나 관광객이 많은 8월과 12월에 관람객이 많은 편”이라고 밝혔다.

동양을 대표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당초 포부와 달리 외국인 관람객이 눈에 띄게 적은 것도 고민거리 중 하나. 김홍남 관장은 “패키지로 여행을 오는 외국인들은 경복궁, 청와대 쪽의 동선을 선호한다”면서 “용산민족공원 계획이 관건이다. 자칫하면 박물관 관람객이 경복궁 시절의 10분의 1로 급감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1년 동안 열린 전시회는 모두 8회. 교육홍보팀 양희경 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하다. 그 이상이 되면 준비가 부실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15만여 점. 유물이 늘어날 것이라고 봤으나 경복궁 시절과 별 차이가 없다. 이에 대해 박물관 측은 “예산 부족으로 유물 구입은 어려운 상태고 기증받는 유물도 생각보다 적다”고 말했다.

▼김홍남 박물관장 “동양부 설치 아시아 대표 박물관으로”▼

“지난 1년은 자리 잡기 기간이었어요.”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남(58·사진) 관장은 개관 이후 박물관의 지향점인 ‘세계화’ 프로그램이 빈약했다는 지적을 선선히 인정했다. 취임 2개월째인 그녀의 구상은 무엇일까.

“동양부의 설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동양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되려면 한국의 유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다른 문명의 유물은 고작 낙랑 유물, 신안 유물 정도거든요.”

동양부를 설치하고 정착시키는 일만은 반드시 임기 내에 끝내겠다는 것이 제1목표다. 요즘 김 관장의 고민은 경복궁 시절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이 줄고 있다는 것.

“메트로폴리탄에 있을 때 미국 대통령이 이집트 대통령을 이집트 전시관으로 데려가 함께 얘기를 나눴는데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어요. 박물관의 그런 숨겨진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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