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을 쌓고, 긁어내고 평면과 입체의 공존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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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태호 홍익대 교수의 추상화 작업은 독특하다. 캔버스에 20여 색의 물감을 여러 차례 붓질해 쌓아올린다. 그림마다 물감의 두께가 1cm 가까이 된다. 그 다음에 겹겹이 쌓인 물감을 일정한 간격으로 끌을 사용해 긁어낸다. 화면은 수많은 작은 칸으로 나눠지고, 그 안에서 여러 색이 저마다의 노래를 합창하는 듯하다. 평면 회화지만 가까이서 보면 입체감도 있고 움직임도 느껴진다.

그는 11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02-732-3558)에서 열리는 ‘김태호 출판 기념전’에서 최근작 ‘내재율(Internal Rhythm·사진)’ 시리즈 26점을 전시하고 있다. 화랑에서 만난 그에게 독특한 작업 방식부터 물었다.

“도 닦는 행위입니다. 칠함과 긁어냄의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내면에서는 예술의 의미를 묻고 답합니다. 그림 제목대로 내면의 리듬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전시작 중 가로 193cm, 세로 260cm에 이르는 대작도 있다. 이 위에 칠하고 긁어내는 작업은 차라리 ‘중노동’이다. 그래도 그는 “가장 부지런한 화가로 불리고 싶다”고 말한다. 이미 물감을 가장 많이 쓰는 화가로 불린다.

‘내재율’ 시리즈는 안의 리듬과 밖의 구조를 형상화한다는 평을 듣는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지바 시게오 씨는 도록에서 “그의 작품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몸으로 인지되는 광채가 나온다”며 “내재율은 음악적 리듬이 아니라 몸의 생물학적 리듬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1970년대 초부터 추상화의 세계를 넓혀 온 그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과 같은 작업 방식을 천착해 왔다. 그는 “변화를 주라는 조언도 있지만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이 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 30여 년 화업을 정리한 470여 쪽의 도록도 나왔다.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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