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이해하기 20선]<17>사다리 걷어차기

  • 입력 2006년 9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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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들은 ‘바람직한’ 정책을 사용한 1980년대 이후의 20여 년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사용한 1960∼1980년대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이 역설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진 정책이 기실 개발도상국들에 유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정책들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기만 한다면 더욱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10여 년 전만 해도 세계 경제의 방향타 정도로 알려졌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한국 사회가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구체적 삶의 현실이 되었다. 위기 이후 국내 사회경제정책은 이전보다 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G8(선진 7개국+러시아)과 같은 국제적 의사결정기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모든 개발도상국에 해당되는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경제의 장기 호황이 관성을 상실한 뒤 경제선진국의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자와 정책결정권자들은 시장에 대한 규제완화, 각종 사회경제정책의 유연화, 시장통합을 통해 부와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약한 점은 이들이 ‘게임의 규칙’을 단일화하고 그 틀 안에서 시장경쟁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최우량 사례를 중심으로 “현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 ‘바람직한 정책’과 ‘바람직한 통치제도’를 수용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선진국의 그 같은 태도를 정상에 오른 사람이 다른 이들이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 즉 ‘사다리 걷어차기’로 규정한다.

풍부한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TINA·There is no Alternative!)’는 세계화에 대해 매력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에 의해 유인되는 세계화라는 게임의 규칙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이를 덜컥 받아들이는 것이 곧바로 엘도라도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1999년 시애틀 WTO 총회 때 벌어졌던 대규모 시위 이후 전개된 반(反)세계화 운동에서 뚜렷이 목격할 수 있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화의 대안은 급진적이지 않다. 실제로 저자는 세계화의 조류에 반대하지 않으며, 다만 개별 국가의 적절한 경제발전전략은 상응하는 제도의 질적 향상이 동반될 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외부로부터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의 강요 대신 민주적 정부가 국가 경제의 발전 단계에 적절한 산업·무역·기술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때 경제발전이 가능하다는 평범한 공리(公理)를 재차 강조한다.

유감스럽게도 저자의 논지는 여기서 멈추고 있다. 문제는 저자가 강조하는 이러한 공리조차 오늘날에는 이데올로기 논쟁의 과녁이 될 정도로 특정 사회 집단에 의한 바람직한 제도와 정책에 대한 개념의 규정력이 막강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국가의 산업·무역·기술정책과 그에 조응하는 제도의 발전은 막연한 사회적 대타협을 전제로 하는 게 아니라 대안적 정책프로젝트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과 기능, 대안적 경제발전전략의 주체에 대한 포괄적인 사회담론이 절실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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