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한기호]표절공화국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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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한국(BK)21의 일환인지는 몰라도 어느 해엔가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교재 개발비라며 일선 대학교에 100억 원이라는 거액을 내려 보냈다. 지원을 받아 제작된 교재들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 20여 명의 출판인이 모였다. 그 교재들이 자사의 출판물을 표절했다는 것을 알고 공동 대응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임의 결론은 즉각적인 법적 대응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결국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정작 표절을 당한 출판물의 실제 저작권자인 저자들이 법적인 대응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소송 중에 남의 저서를 표절한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표절에 무덤덤한 건 교수뿐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학술 관련 출판사는 교수들에게 같은 주제의 외국 책 몇 권을 적당히 짜깁기해 집필서로 포장해 줄 것을 요구한다. 출판사의 편집 책임자는 그런 경우 ‘비싼’ 저작권료나 번역료가 들지 않으면서도 저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거삼득의 이득이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쳤다. 또 그런 책은 교수들이 심사요원으로 참여하는 각종 추천도서 목록에 선정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외국 저작 번역 계약을 하고 전량을 정성 들여 번역한 책은 학문적 성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 비정상적인 ‘제도’가 표절을 방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자신의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표절이나 중복 발표까지 문제 삼으면 장관으로 임명될 자격이 있는 교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그래도 일리 있는 말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우리 사회의 표절 행태는 심각하다.

일부 교수는 승진이나 포상용으로 제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저서를 자기 책처럼 포장해 줄 것을 출판사에 요구한다. 이런 경우 시판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표절을 당한 당사자는 십중팔구 그 사실마저 확인하기 어렵다. 종종 사실이 발각되어도 그냥 중동무이하기 일쑤다.

대학교재의 경우 동일한 책을 갖고 지역에 따라 다른 교수의 이름을 저자로 올려 판매하거나 공저자로 올려 주는 일은 고전적인 수법에 속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런 수법 뒤에는 채택료라는 뒷거래가 있기 마련이다.

일부 대학교재는 한두 개의 장(章)을 순서만 바꾸거나 넣었다 뺐다 하면서 개정판이라고 표기해 10년 이상 사용한다. 이런 일들을 방치하고서 학문 발전을 기대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표절에 관한 한 ‘문제 교수’와 출판사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같다. 서로의 비리를 눈감아 주며 공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세기 말에 출현한 디지털 복제기술은 표절을 매우 쉽게 만들고 있다. 지금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게까지 표절의 일상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제물을 작성할 때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를 쓰는 것도 도용 및 표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뤄진 결과물이 또 인터넷에서 유령처럼 떠돌며 판매되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가히 표절공화국이라 바꿔 부를 만하다.

가장 양심적이어야 할 교수들과 저작권을 생존 기반으로 하는 출판사들마저 표절에 대해 무감각하니 자라나는 세대의 잘못된 인식을 탓할 자격이나 있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저작물을 ‘공공의 재산’으로 보는 이상한 논리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사적인 재산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 지적재산권의 확립, 그것이 전방위적이고 세계적인 콘텐츠 전쟁에서 승리자가 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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