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蘇 바리시니코프 서방 망명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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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영화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테일러 핵퍼드 감독의 ‘백야’(1985년 작). 미국과 소련의 냉전 상황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남성 무용수의 세계를 그린 이 영화가 개봉된 뒤 국내에 발레 붐이 일기도 했다.

11회 연속 회전, 의자를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환상적인 몸짓….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라이오넬 리치의 노래 ‘세이 유 세이 미(Say You Say Me)’와 함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춤은 얼마나 감미로웠던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 그레고리 하인스의 탭댄스와 바리시니코프의 환상적인 춤 대결은 이 영화의 백미(白眉)였다.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노(남성 무용수)로 꼽히는 바리시니코프는 1948년 당시 소련에 속했던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9세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고 1960년부터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발레 수업을 받았다. 그의 특별한 재능은 곧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다이내믹한 동작과 애절함이 배어 나오는 눈빛, 누구나 빠져들고 마는 강한 카리스마…. “최고의 댄서”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1966년엔 러시아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키로프 발레단에 들어가 간판스타로 활약했다. 최고 수준의 월급과 고급 아파트가 제공됐다.

하지만 그가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건 ‘표현의 자유’였다.

보수적이고 정통발레를 지향하는 키로프 발레단은 모던댄스를 지향하던 그가 몸담고 있기엔 너무나 답답한 ‘새장’ 같았다.

1974년 6월 29일. 바리시니코프는 캐나다 토론토 투어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단원들과 같이 버스를 타지 않고 미리 대기시켜 놓은 자동차를 타고 달아나 캐나다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소련은 그의 서방세계 망명을 두고 “잠시 여행을 떠났을 뿐 곧 돌아올 것”이라고 둘러댔으나 바리시니코프는 끝내 조국을 등졌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와 뉴욕시티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활동했고 ‘화이트 오크 댄스 프로젝트’라는 현대무용단을 창단해 모던댄스의 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2001년 한국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연기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백야’ ‘지젤’ 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고 미국의 인기드라마 ‘섹스 & 더 시티’에도 출연하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예술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그는 자신을 한 가지 이미지로 규정짓는 걸 바라지 않았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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