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변이는 적인가 친구인가…엑스맨 - 최후의 전쟁

  • 입력 2006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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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첫 편이 등장한 이래 돌연변이와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지를 다룬 영화 ‘엑스맨’은 단순한 액션 판타지가 아니다. 엑스맨의 완결편인 ‘최후의 전쟁’은 숱한 이미지적 실험이 주는 눈요깃거리도 볼만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의미들을 곳곳에 장치함으로써 3편까지 이르며 팬들을 모은 ‘엑스맨 현상’이 단지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우선 ‘엑스맨’ 시리즈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돌연변이는 단순히 인간 삶을 위협하는 적대적 존재가 아니라 소수자이자 아웃사이더에 대한 상징으로 읽힌다. 영화 속 돌연변이는 인간 세상으로 따지면, 피부가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

영화에는 자신들이 정상이 아니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돌연변이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이 섬세하게 깔려 있다. 등에 돋아나는 날개를 잘라 버리기 위해 필사적인 소년 엔젤의 모습에선 주류에 끼지 못하고 소수자로 살아가야 하는 불안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껴야 하는 아웃사이더들의 불안이다.

하지만 돌연변이들은 이것을 분노나 증오로 푸는 대신,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에 대한 모색으로 푼다. 이는 ‘다름’을 차별이 아닌 차이로 인정하며 넓게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세계화 시민의 덕목을 은유하는 것이다. 돌연변이의 정체성과 고민에 초점이 맞춰진 1편과 2편에 비해 돌연변이 삶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더욱 명확한 주제의식을 드러낸 3편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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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들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제도권을 배척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제도권을 인정하며 마침내 제도 안에서 자신들의 권익을 내세운다. 그리하여 3편에서는 정부 안에 돌연변이종을 전담하는 부처가 생기고 이 부처의 장으로 털북숭이 돌연변이 장관까지 등장시킨다. 삶에서 뭔가를 주장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길을 가는 것이 현명한지를 은유하는 대목이다.

5월 말 개봉 직후 미국 박스오피스 흥행 신기록을 수립하며 1, 2편을 뛰어넘는 관객을 끌어모은 ‘엑스맨’ 완결편의 메시지는 이처럼 평화와 사랑, 타인에 대한 인정과 이해로 일관된다.

현명한 돌연변이들 덕분에 어느 순간, 그들이 그토록 고통스럽게 여기던 장애(障碍)는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초능력으로 전환한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은 180도 달라진다는 지혜가 담겨 있다. 블록버스터적 물량을 쏟아 부으면서도 사회와 삶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갖고 섬세한 이야기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영화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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