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황평우]문화재환수 ‘민-관-국제연대’ 필요하다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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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약탈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재 약탈은 원산국의 국가적 자존심뿐 아니라 문화재의 가치를 짓밟는 비문화적 행위이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는 문화재 약탈의 정의에 ‘무력분쟁, 점령, 식민지배의 결과 반출하는 것은 물론 불법 거래로 가져가는 것’까지 포함시켰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3세계 등에서 약탈 도굴한 것뿐 아니라 강압적으로 매입한 것도 포함된다. 영국 박물관(흔히 대영박물관으로 잘못 번역되고 있음),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외국산 소장품은 대부분 ‘불법 취득 장물’인 셈이다.

이들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해 간 문화재를 “보편주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자국에 둬야 한다”고 억지를 부린다. 또 옮겨온 지 오래됐기 때문에 ‘귀화 문화재’로 봐야 한다는 궤변도 늘어놓는다.

그러나 문화보편주의는 기본적으로 문화민주주의와 문화다양성을 이해하고 반영해야 한다. 문화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보편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으며, 특히 약탈을 두고 이런 용어를 쓰는 것은 문화보편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이들은 “약탈 덕분에 문화재가 잘 보존되고 관리됐다”며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문화재 관리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병인양요 때 강화도 정족산에 잘 보관돼 있던 규장각 도서 6000여 권 중 300여 권은 빼앗아 가고 나머지는 불태워 버린 것이 ‘프랑스식’으로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방식인가? 프랑스는 국립도서관 직원이 우리의 고문서를 불법으로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또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약탈당한 미술품을 대부분 돌려받았다. 약탈 문화재에 대한 일관된 논리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동안 문화재 환수에 역량을 보여 주지 못했다. 협상 전문가가 부족하고 국제적 반환 정보 수집에 능동적이지 못했다. 규장각 도서의 경우 ‘장기간 전시’ ‘디지털화’ 등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번 합의로 ‘온전한 환수’가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많다.

중국은 정부 간 협상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정부(국방부)와 기업이 나서서 수만금을 주고서라도 경매장에서 사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최근 국내 모 방송도 세계 경매장에 나도는 우리 문화재를 구매해 들여오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려고 관련 부서에 기부금품 모금 허가 신청을 했다. 약탈 문화재를 국민모금으로 구입해 국가기관에 관리를 맡기는 것은 문화재 환수운동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민간 주도의 문화재 반환은 데라우치 문고에서 시작됐다.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1910년부터 5년간 문화재 조사 사업을 실시해 1500여 점의 문화재를 반출했다. 야마구치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이들을 찾아내고 1995년 돌려받은 것은 민간 차원의 노력 덕분이다. 당시 야마구치대는 정부가 아닌 대학 차원에서 보내 주며 ‘반환’ 대신 ‘기증’이라는 용어를 썼다. 최근 있었던 조선왕조실록, 북관대첩비의 환수도 민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민간의 노력으로 시작됐지만 최초로 국가기관 간에 주고받았다는 큰 의미가 있다.

이제부터라도 국제법, 문화재관계법 등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와 외교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약탈 문화재 환수 운동을 다각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국제회의나 포럼에 한국의 문화재 상황을 알리는 홍보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이집트 인도 중국 베트남 멕시코 에티오피아 등 약탈당한 문화재가 많은 나라와 연대할 필요가 있다. 이들과 함께 ‘문화재 반환 국제기구’를 만들도록 주창하는 것도 시도할 만하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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