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도박과 춤추는 자본주의… ‘도박’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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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거다 리스 지음·김영선 옮김/376쪽·1만8000원·꿈엔들

“도박 행위는 수음(手淫)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 둘을 묶어 주는 연결 고리는 ‘강박’에 사로잡힌 손동작이다. 그 열정적인 손놀림을 보라. 자위라는 악이 도박에의 탐닉으로 대체된 것이다….”(프로이트)

인류의 역사에서 도박은 오랫동안 죄악이었다. 중세의 교회는 도박을 신성 모독으로 간주했고, 근대의 부르주아에게 도박은 부의 창출을 우연의 농간에 맡기는 범죄 행위였다. 20세기에 이르러 프로이트는 도박을 정신 질환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복권을 사고, 경마장에서 베팅을 하고, 사무실에서 사다리 타기를 한다. 우리는 ‘호모 알레아토르(homo aleator)’, 도박적 인간인 것이다!

이 책은 로마제국에서 라스베이거스에 이르기까지 우연과 확률, 그리고 기회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나 수많은 문학작품을 통해 도박이라는 우연의 세계가 갖고 있는 외적, 내적 풍부함을 한껏 드러낸다.

일찍이 카지노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은 보들레르였다. “기억하라! 지칠 줄 모르는 도박자들아. 시간이 룰렛의 판에서 항상 승리한다.”

오웰은 도박의 사회적 마취 효과에 대해 우려했다. “복권은 프롤레타리아가 심각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대중 이벤트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즐거움이고, 어리석음이고, 진통제이고, 지적 자극이다.”

우연의 매혹, 그 불평등한 변덕을 갈파한 것은 고골리였다. “게임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카드 앞에서 평등하다.”

저자는 21세기를 우연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위험사회’로 진단한다. 위험과 투기, 변동성과 비결정성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며, 사회는 갈수록 더욱 공개적으로 무질서해지고 있다는 것.

자본주의는 도박을 포용한다. ‘위험’은 후기 산업사회의 모습을 그리는 데 매우 친숙한 개념이다. 세계 경제가 갈수록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필요로 하면서 서구의 금융 시스템이 급속하게 거대한 카지노를 닮아가고 있다.

외환 딜러들은 이렇게 탄식한다. “이것은 도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사코 그것을 경제 지식으로 치장하려 든다. 필요한 것은 단지 동물적 감각이다. 달러가 오른다, 파운드가 내린다. 베팅하라!”

투기는 오랫동안 자본주의의 본성이었다. 17세기 이래 자본주의 확산의 동력은 ‘카지노’에 있었다.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은 석유를 캐는 사람들이 아니다. 석유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다. 원제 ‘The Age of Chance’(2002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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