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7년 린드버그 대서양 횡단비행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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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냈다. 저것이 파리의 불빛이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죽음을 무릅쓰고 33시간을 날아 목적지에 마침내 도착했으니 그 감격이란….

비행기 안에는 라디오, 무전기는 고사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명탄과 낙하산도 없었다. 무게를 줄여 한 방울의 연료라도 더 싣기 위해서였다.

더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는 연료 공급이 가장 중요했다. 연료탱크가 시야를 가려 잠망경으로 앞을 내다봐야 할 정도로 기름을 가득 실었다.

하지만 파리 에펠탑의 불빛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추위, 졸음과 싸운 33시간 동안의 사투(死鬪)는 환희에 묻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대서양 논스톱 횡단 비행.

1927년 5월 20일 오전 7시경 미국 뉴욕 커티스 비행장을 떠난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는 이튿날 밤 10시경(뉴욕과 파리의 시차는 6시간)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 활주로에 안착함으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 사이를 운항하는 우편비행기의 평범한 조종사였던 25세의 젊은이 찰스 린드버그는 일약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불굴의 의지로 대서양을 건넌 그는 그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첫 번째 ‘올해의 인물’이 됐다.

뉴욕의 호텔왕 레이먼드 오티그가 뉴욕에서 파리까지 단숨에 날아가는 사람에게 내건 상금 2만5000달러도 손에 쥐었다.

대서양 논스톱 횡단 비행 이후 1년 만에 세계의 비행기 대수가 4배, 승객 수는 30배로 증가했다니 린드버그가 세계 항공산업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유명세가 오히려 독이 됐을까.

단독비행 2년 뒤 백만장자의 딸과 결혼해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린드버그는 1932년 20개월 된 아들을 유괴범에게 잃고 만다. 범인은 린드버그로부터 5만 달러의 현금을 받고 나서도 약속과 달리 아이를 살해했다.

실의에 빠진 린드버그는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자책하면서 1936년 독일로 이주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때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참전했고 전쟁 뒤 공군 준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린드버그는 말년을 하와이에서 보내다 1974년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보여 준 ‘개척 정신’은 지금도 세계의 존경을 받고 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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