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수진]진정한 배우의 길 보여준 ‘영원한 햄릿’

  • 입력 2006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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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그는 햄릿이었다.

17일 오전 배우 김동원 씨의 영결식이 열린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 위에는 1951년 우리나라 최초의 ‘햄릿’으로 무대에 섰을 당시 고인의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생전에 ‘영원한 햄릿’으로 기억되길 원했던 고인이 마지막 떠나는 길에 ‘햄릿’으로서 조문객을 맞는 듯했다.

달오름극장은 1994년 고인의 마지막 출연작인 ‘이성계의 부동산’이 공연됐던 무대. 고인이 17년 전 ‘평생의 친구’이자 연극동지였던 이해랑 선생을 떠나보내며 눈물의 조사(弔辭)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날 연극평론가 유민영 씨는 조사를 통해 풍요롭고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힘든 연극을 택했던 고인의 삶을 이렇게 추모했다.

“…고인은 세 아들이 대학을 마치자마자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한 후 방송과 영화 활동은 훌훌 털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오직 연극 무대만 지키셨습니다. 그 후에는 아무리 방송과 영화에서 거금을 제시하며 유혹해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영결식에 참석했던 연극인들은 “요즘 젊은 배우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연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탤런트나 영화배우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연극을 하는 젊은 배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배우’보다 ‘스타’를 꿈꾸는 이들은 영화나 방송에서 뜨고 나면 다시는 춥고 배고픈 연극 무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6·25전쟁 와중, 미군이 버린 깡통을 오려서 무대 장식을 만들어야 했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연극사에 길이 남을 명작 ‘햄릿’을 선보였던 고인은 생전에 “연극에 대한 인식과 환경은 좋아지는데 젊은 후배들의 불평은 오히려 늘어만 간다”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고인의 셋째 아들인 가수 세환 씨가 녹음한, 고인의 은퇴 무대에 바쳐졌던 곡 ‘그대 배우되어’가 영결식장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걸어온 고인의 삶이 노랫말과 겹쳐진 때문인지 참석자들의 표정은 더욱 숙연해졌다.

“그대 배우 되어/저 산 꼭대기 바위처럼/흔들림 없이 그렇게 살아왔노라…/산길 나그네의 기약 없는 발길처럼/그대 한평생 걸으며/그냥 그렇게/배우 되어 살아왔노라.”

강수진 문화부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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