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잔치’에 초대합니다…궁궐 무용과 음악 ‘궁중정재’

  • 입력 2006년 4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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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창경궁에서는 왕실의 잔치에서 선보였던 궁중 정재가 상설공연된다. 16일 창경궁 명정전에서 열린 ‘무고무’ 예행연습. 사진 제공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3일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창경궁에서는 왕실의 잔치에서 선보였던 궁중 정재가 상설공연된다. 16일 창경궁 명정전에서 열린 ‘무고무’ 예행연습. 사진 제공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743년 어느 날 창경궁 영화당에는 거대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당을 메운 것은 1700여 명의 악사와 궁중 무용수. 영조의 50회 생일인 이날,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잔치가 열린 것이다. 조선조의 잔치는 신하가 임금께 올리는 형식이었지만 이날의 잔치는 군왕이 주최자였다. 왕이 주인공이 되어 문무관료 종친 백성을 모아 큰 판을 벌인 것. 조선시대 최초의 ‘어연(御宴)의례’로 꼽히는 영조의 오순(五旬)잔치 일부가 일요일인 23일 오후 2시 서울 창경궁 명정전에서 다시 펼쳐진다. 왕이 없는 시대, 시민들을 관객으로 삼아 조선시대 정궁에서 벌어진 최고 연희 형태인 ‘궁중 정재(呈才)’가 재연되는 것.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창경궁에서 11월 26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상설 공연된다. 매회 공연에 참여하는 무용수와 연주자는 100명이 넘는다. 》

이번 상설 공연에서는 무고무(舞鼓舞) 향발무(響발舞) 처용무(處容舞) 장생보연지무(長生寶宴之舞) 등이 재연된다. 특히 임금에게 여섯 번째 잔을 올리고 추는 향발무(향발이라는 악기를 들고 추는 춤)와 대선(큰상)을 올리고 추는 처용무는 그 화려한 춤사위로 관객들의 눈길을 끌어당길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을 위한 ‘궁중 정재’ 상설 공연이 마련된 것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커진 ‘왕의 연희’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은 지난해 12월 ‘태평서곡’, 올해 2월 ‘봉래의(鳳來儀)’ 등 궁중 연례(宴禮)악을 무대에 올렸고, 20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1호인 ‘종묘제례악’을 18세기 방식대로 연주하는 음악회를 열었다. 궁중 연례악은 지난해 한국이 주빈국을 맡았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도 공연돼 “환상적이다”는 극찬을 받았다. 당시 재연된 것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박옥진 국립국악원 기획홍보팀장은 “‘태평서곡’과 ‘봉래의’ 공연은 입석까지 다 팔렸고 유료 관객 점유율이 80∼90%에 이를 만큼 인기를 끌었다”며 “관객 설문조사에서도 ‘이렇게 볼거리가 화려한 우리 예술이 있었다니 놀랍다.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됐다’며 국악 장르 중 가장 높은 공연 만족도(85%)를 보였다”고 말했다.

20일 2시간이 넘는 ‘종묘제례악’ 공연을 감상한 김정희(41·여) 씨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리 옛 음악을 들으며 시공을 초월하는 예술성과 긴 호흡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궁중연희에 대한 관심은 영화 ‘왕의 남자’, TV 드라마 ‘대장금’ ‘궁’ 등의 영향으로 조선 왕실의 음식, 놀이문화 등 궁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김철호 국립국악원장은 “복잡한 현대생활에 지친 관객들에게 느린 궁중예악이 인기인 이유는 마음의 평안을 찾는 ‘웰빙’이나 ‘느림의 미학’이 각광받는 것과도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김영숙 정재연구회 예술감독은 “수십 년간 사물놀이나 부채춤 등이 ‘한국 예술’로 국제 사회에 알려졌다면 이제는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정악, 정가, 정재와 같은 고급 한류가 주목받는 시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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