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웅의 부활…방송3社 새 드라마 ‘4인4색 카리스마’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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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가 누구시지?”(선생님) “이미연요.”(초등학생)

TV 드라마로 역사를 ‘학습’하는 세대 사이에서 빚어지는 웃지 못할 코미디다. 사실(史實)을 아는 어른들도 드라마 속 연기자의 이미지가 실존 역사인물에 오버랩 되기는 마찬가지. 회사원 박치훈(32) 씨는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보다는 ‘왕건’하면 최수종, ‘신돈’하면 손창민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TV에서 창조되는 역사 영웅들의 이미지가 올해는 고대사의 영역까지 확장된다.

○ 고구려 배경 대작 잇따라

MBC ‘주몽’(5월 8일)을 시작으로 SBS ‘연개소문’(6월 방영), KBS1 ‘대조영’(8월 방영), 광개토대왕의 시대를 그린 김종학 프로덕션의 ‘태왕사신기’(올해 말 방영) 등이 올해 잇따라 방영되기 때문.

무엇보다 캐스팅이 화려하다.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손을 잡은 ‘태왕사신기’의 주인공 광개토대왕 역은 ‘용사마’ 배용준(34)이 맡았다. SBS ‘연개소문’에는 ‘용의 눈물’의 태종 이방원, ‘명성황후’의 대원군 등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유동근(50)이 캐스팅됐다. ‘허준’. ‘올인’의 최완규 작가와 ‘다모’의 정형수 작가가 공동 집필한 MBC ‘주몽’의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 역은 드라마 ‘해신’에서 염장 역으로 인기를 얻었던 송일국(35)이 캐스팅됐다.

100부작 대하사극으로 기획 중인 KBS ‘대조영’ 역에는 최수종이 낙점됐다. 대조영은 고구려 장군 출신으로 멸망한 조국의 부활을 꿈꾸며 698년 발해를 세운 인물.

방송사들은 자체 세트장 건립 등 수백억 원대의 제작비를 투입하며 물량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무엇보다 주연 배우 캐스팅을 가장 중시했다. 시청자들은 역사적 영웅일수록 강한 선입견을 갖고 있어 이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할 경우 시청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MBC ‘신돈’의 손창민의 경우 도회적이고 코믹한 그의 이미지가 시청률 부진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시청자 유현욱(29) 씨는 “고구려 영웅으로 캐스팅된 연기자들치고는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부드럽다”고 말했다.

○ 동명성왕=송일국, 연개소문=유동근?

얼굴학 연구자인 조용진 한서대 얼굴연구소 소장은 “용기와 신뢰를 나타내는 위인상은 얼굴이 길고 눈이 작고 턱이 크다”며 “얼굴이 짧으면 어리고 점잖아 보이지 않고 눈동자가 작고 턱이 커야 어른, 즉 성숙한 남자다운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기자 중 여기에 딱 부합되는 인상의 소유자는 없다는 것.

국사학자들은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고구려 영웅들의 고정된 이미지는 한국 근대사와 연관된다고 말한다. 고난의 근대사에서 잃어버렸던 민족의 기상을 군사력이 가장 강력했던 고구려에서 찾는다는 보상 심리라는 것. 전호태(역사학) 울산대 교수는 “광개토대왕만 해도 정복 군주이기 이전에 평양 천도를 위해 불교 사원을 지으며 종교 발전을 이루려 했던 문화군주”라며 “강력한 고구려 영웅은 역사적 사실에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소망이 추가돼 더욱 증폭된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특수성 위주로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연개소문 유동근은 중·장년기 연개소문의 묵직함과 절제감을 보여 주는 데 적합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됐다. 대조영 최수종은 고구려의 멸망이라는 처참한 환경을 견뎌내며 한편으로는 고뇌하고 한편으로는 싸우는 ‘외유내강형’ 이미지로 선택됐다. 송일국은 무술에 달통한 젊은 주몽에 포커스를 맞춘 드라마 설정 때문에 캐스팅됐으며 도회적 이미지를 가진 배용준은 판타지 사극이라는 장르와 아시아 시장 수출을 염두에 둔 대작이라는 점 때문에 적임자로 선택됐다. ‘연개소문’의 이종한 PD는 “보편성만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면 새로운 시각으로 인물을 보는 재미가 없어져 극이 무미건조해진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중이 가지는 드라마 속 영웅의 이미지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과 캐스팅된 배우의 고정 이미지가 결합해 만들어진다. MBC ‘대조영’의 장영철 작가는 “특정 배우를 생각해서 쓰지 않지만 캐스팅이 되고 나면 일정 부분 배우의 이미지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KBS ‘불멸의 이순신’의 탤런트 김명민(33)의 경우 드라마 초기 유약해 보여 이순신 역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을 들었지만 자신의 이미지에 맞는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을 부각해 성공했다.

허동현(국사학) 경희대 교수는 “드라마는 역사교과서 이상으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인물 묘사에 있어서도 지나친 민족주의, 영웅주의에 함몰되지 말고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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