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11>숲에서 길을 묻다

  • 입력 2006년 3월 3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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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한 몸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봄 숲 계곡의 도롱뇽 알은 밖으로 투명하게 열려 있으면서 닫혀 있다. 나무들도 보일락 말락 한 기공을 통해서 안은 밖으로 열려 있되 밖과 안은 수피라는 막으로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내 검게 탄 피부도 세상과 호흡하며 바깥과 끝없이 교류한다. 숲은, 서로의 ‘벽’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숲은 막혀 있는 듯 트여 있고, 끊긴 듯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닫혀 있는 듯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본문 중에서》

만물이 소생하고 약동하는 새봄의 들머리를 넘어서고 있는 만큼 밝고 희망찬 얘기를 하는 것이 예의이리라. 한데 그러기엔 영 심사가 편치 않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이야말로 자연의 위대한 섭리 중에서도 고갱이일 것이거니와 바로 그 자연이 지금 이 땅에서는 마구잡이로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이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를 새삼 되묻고 있다. 여기서 숲은 이 물음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고 해답의 실마리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글마다 경이로운 자연과 신비로운 생명에 바치는 헌사가 풍성하게 아로새겨져 있지만 정작 그 속에서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삶과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그러니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숲’은 물리적인 자연으로서의 숲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로질러 ‘사람의 숲’과 ‘문명의 숲’까지 아우르는, 곧 자연과 인간과 사회를 드넓게 포괄하는 총체적인 ‘생명의 숲’인 셈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 ‘숲으로 가는 길’은 우리 숲의 사계(四季)와 숲 문화의 모범사례인 일본과 코스타리카의 숲을 다루고 있다. 아름답고도 맛깔스러운 문장에 힘입어 숲 속에서 숲과 더불어 순환하고 영속하는 온갖 생명의 삶이 일구어 가는 자연의 파노라마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해서 번다한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다면 자신도 모르게 오감(五感)이 새록새록 깨어나 숲과 그 숲을 이루는 나무, 풀, 새, 벌레, 흙, 바람, 비, 햇빛이 연출하는 무궁무진한 자연의 노래와 생명의 율동에 동참하는 각별한 경험을 맛볼 수 있을 법도 하다.

제2부 ‘문명, 풀빛 조율에 대하여’는 오늘날의 도시 문화와 산업화된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이자 반성이다. 1부에서 숲을 비롯한 자연 생태계가 간직하고 있는 갖가지 사연과 비밀들을 오롯이 풀어 놓았다면 2부에서는 그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인간의 탐욕과 오만과 무지를 조곤조곤 따지고 있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요즘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감수성과 통찰력을 상실한 이른바 ‘생태맹(ecological illiteracy)’이 대다수인데 이들에게는 한 그루 느티나무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철새를 위해 갯벌과 습지를 보전하자는 것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숲에 대한 실용적인 안내나 해설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이런 책들이야 안 그래도 차고 넘치는 터, 외려 이 책은 새봄을 만나기 위해 숲을 찾더라도 무작정 들뜬 기분으로 먹고 마시며 놀기보다는 숲에서 길어 올리는 싱싱한 사유와 명상을 통해 한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2, 3쪽마다 한 장씩 배치된 아름다운 사진이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장성익 ‘환경과생명’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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