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사제지간 임요환-최연성 “이젠 맞수”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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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계일학(群鷄一鶴)의 실력으로 정상에 군림하던 남자가 어느 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제자를 키우기 시작한다.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염려 속에 어느새 훌쩍 스승을 넘어서 버린 제자. 바둑기사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게이머 임요환(26)과 최연성(23). 두 사람은 프로게이머의 세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에 비견되는 사제지간이다.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SK텔레콤 게임단 T1 합숙소를 찾아 앞으로 치열한 대결을 펼칠 이들을 만났다.

○ 한 지붕 아래 20대 스승과 제자

“연성이하고 경기하는 게 제일 싫습니다. 서로 너무 잘 알거든요.”(임요환)

“평소 연습실에서 요환 형하고 붙으면 재미있게 게임을 하는데, 실제 경기에서는 너무 부담됩니다.”(최연성)

테란의 황제, 50만 명이 넘는 팬클럽, 억대 연봉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한국 e스포츠의 스타 임요환. 10일 열린 ‘제1회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에서 최우수선수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떠오르는 신예 최연성.

스타크래프트의 세계에서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은 것은 2002년이다. 임요환은 당시 아마추어였던 최연성의 재능을 알아보고 프로게임단에 연습생으로 입단하라고 권유했다. 이후 최연성은 한 지붕 밑에서 합숙하며 임요환에게서 전략 전술, 프로게이머의 자세 등을 직간접으로 배우며 프로게이머로 성장했다.

“가르쳤다기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잘한 겁니다. 제가 예전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테란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었죠.”(임요환)

“요환 형이 게임하는 법을 등 뒤에서 눈 부라리며 배웠습니다. 특히 프로정신을요.”(최연성)

2002년 당시 최연성의 연봉은 300여만 원, 임요환은 1억5000만 원. 대결에서도 대부분 임요환의 승리.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실력은 비슷해졌다. 오히려 현재 정규리그 전적은 임요환이 3승 5패로 처진다.

○ 청출어람(靑出於藍)은 아무나 하나?

이들은 게임 방식도 조훈현, 이창호와 흡사하다.

임요환의 특기는 상대의 혼을 빼는 드롭십(적진 한복판에 자신의 병력을 투입하는 게임전술)과 번뜩이는 전략. 조훈현 9단의 화려한 바둑을 그대로 옮긴 듯하다. 반면 최연성은 자신의 진영을 최대한 단단히 구축한 뒤 경기 후반에 엄청난 물량을 모아 상대를 몰아치는 스타일이다. 기다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창호 9단을 연상케 한다.

“이제 제가 연성이의 좋은 점을 많이 흡수해요. 부족한 면이 물량이거든요.”(임요환)

연습 장소가 같은 이들은 경기에서 맞붙을 때면 자신이 잘 때 상대방이 연습할까봐 같이 잠을 잘 정도다.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고의 게이머를 상징하는 ‘골드마우스’가 남아 있기 때문. 정규 스타리그 3회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골드마우스를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에 따라 사제의 운명이 갈린다. 현재 임요환, 최연성 둘 다 2승을 기록했다.

“요환 형하고는 꼭 결승에서 만나고 싶어요. 요환 형의 명성 때문에 제가 더 주목을 받을 수 있거든요.(웃음) 심리전에 강한 요환 형과의 대결이 재미있습니다.”(최연성)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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