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

  • 입력 200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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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에코의서재
사진 제공 에코의서재
◇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로리 애슈너 외 지음·조영희 옮김/256쪽·1만800원·에코의서재

《그대는 이미 꿈꾸던 것보다 더 높은 목표에 올랐다! 원하던 것을 모두 손에 넣었다!

“그런데 이 순간, 행복하기란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대체 왜 사람들은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성공한 사람들조차 괴로워하는 걸까?

왜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가?》

항상 만족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좌절을 향해 스스로를 내몬다. 그들에게 불만족은 습관이다. 하나의 성격이다. 불평과 불만, 그것은 언제나 그들의 삶 속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은 쓸데없이 힘을 소진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그 순간에 우울증에 빠져든다. 기꺼이 칭찬을 받아들이질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을 의심한다. 그들의 내면에는 항상 배고픈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들은 오랜 심리 상담을 통해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에 대해 이런 진단을 내린다. “만족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성취의 문제도 아니다. 만족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존중감이다.”

‘만성적 불만 증후군’의 기저에는 완벽주의나 비교 콤플렉스, ‘강박적 자기의존증’과 같은 성격장애가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나르시시즘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자신이 사랑받고 있으며 특별한 존재라는 자기애를 갖지 못하면 영원히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된다.”

우리는 자라면서 ‘거짓 자아’를 만들어낸다. 세상과 타협해 사람들이 바라는 존재가 된다. 기대감에 떠밀려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눈을 감게 된다. 이때 자신의 본모습에서 너무 많이 떨어진 사람들은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렸을 때는 살아남기 위해 자아를 길들여야 했지만 이젠 그렇게 행동했던 과거가 문제가 된다.”

우리는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승리해야 하는 사회에서 성장했다. 도처에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할 수 없게 만드는 문화적 압력이 존재한다. “이제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갖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모든 것을 가지거나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극단적인 현실이다.”

저자들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물을 찾기를 바라면서 이미 말라 버린 우물을 파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든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남들에게 뭔가를 계속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스스로에게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마음 깊숙이 웅크리고 있는 분노와 적개심을 직시해야 한다. 더는 상처받은 감정으로부터 도피하지 말라. 먼저 자기 자신에게 공감하라.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은 진실에 다가서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엄격할 수도 있고 너그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자신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변화는 그 다음의 문제다. 변화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할 때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찾아온다. 우리 자신을 바꾸려면 자신을 향해 거울을 돌려놓아야 한다. 환한 빛 속에 자신을 비추어라. 마음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 행복을 느낀다는 것, 이것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야 하는 삶의 일부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 미래를 위해 살지 말라. 자, 이제 충분하다고 말해 보자. 만족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원제 ‘When Is Enough, Enough?’(1996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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