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2>‘숲에 사는 즐거움’

  • 입력 2006년 3월 2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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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매도 사냥감에 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새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다. 만약 온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 매는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본문 중에서》

학술지의 논문은 늘 딱딱하다. 이것은 저자의 말처럼 “명백한 결과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의사소통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도록 연구과정 중에 지녔던 모든 열정이 다 제거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자연을 관찰하던 열정을 되살려 자연과학의 매력이 무엇인가를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쓴 자전적인 글이다.

동물학 교수인 저자는 어릴 때(4세)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 유랑했던 경험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시골의 숲 속에서 5년을 지내면서 나무딸기(산딸기)를 따먹고 땔감을 모으며 야생동물을 관찰한 것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어려울 때 아이들은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진다. 세상은 보기 나름. 어려움은 자연과 소통하고 가족이 뭉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이 책에는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적인 함의도 풍부하게 들어 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 메인 주에 도착한 저자는 오지의 농장에서 어렵게 살면서 숲과 들판에 사는 동식물에 관해 점점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특히 저자는 점점 자연환경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야생동물은 물론 습지와 같은 서식처의 중요성도 배운다. 원래 제목인 ‘분홍바늘꽃밭에서(In a Patch of Fireweed)’가 나타내는 것처럼 이 책에는 숲 속 이야기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분홍바늘꽃은 북극 주변의 북반구에 사는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백두대간을 따라 함백산까지 분포하지만 미국에서는 불탄 곳이나 훼손된 공지에 잘 번성한다. 이 분홍바늘꽃밭에서 추위와 싸워 이기는 뒝벌(뒤영벌)의 경제학, 아프리카 동식물의 상호관계, 물맴이가 펼치는 군무의 의미, 숨는 털벌레와 이를 찾아내는 박새, 노예를 운반하는 개미 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다양성은 오묘하고 복잡다단한 진화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자연과학도로서 논문주제를 사냥하는 역정도 잘 보여 주고 실험실에서의 동물 관찰, 체온 상승과 관련된 박각시나방의 비밀, 의견을 달리하는 학파와의 싸움, 실험을 위한 나방의 심장수술 등 사람에 따라서는 끔찍하다고 느낄 일도 자세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번역도 부드럽게 잘 되었지만 작은 실수도 보인다. 미국 메인 주의 나무로 소개되는 ‘백송’은 영어로는 ‘white pine’이지만 우리말로는 ‘스트로브잣나무’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큰 장점인 섬세한 자연관찰은 저자가 직접 그린 세밀화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밀화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삽화라기보다 소중한 추억’이라고 고백하는 저자의 마음을 읽으며 자연과학도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자연의 향취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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