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67일만에 1175만명 돌파…최다관객 신기록

  • 입력 2006년 3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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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의 남자’가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썼다.

이 영화의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는 “‘왕의 남자’가 5일 오후 5시 전국 관객 1175만 명을 넘어서면서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6135명)가 세운 역대 최다 관객 기록을 깨뜨렸다”고 5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29일 개봉 이후 67일 만에 대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현 추세대로라면 관객 1300만 명까지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게 조심스러운 관측이다.》

○ 무엇을 남겼나?

‘왕의 남자’ 대역 외줄타기에 몰린 인파
영화 ‘왕의 남자’가 한국영화 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세운 5일, 서울 경복궁 내 근정문 앞에서 ‘왕의 남자’ 중 장생의 줄타기를 대역한 권원태 씨가 외줄타기를 공연하고 있다. 안성시립 남사당패의 공연과 강령탈춤 등이 곁들여진 이날 공연에는 3000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 왼쪽 사진은 ‘왕의 남자’ 출연진. 이훈구 기자
스타급 배우도 유명 감독도 없이 순제작비 41억 원을 들여 만든 ‘왕의 남자’. 이 영화의 예상 밖 성공은 관객의 취향은 물론 한국인들의 변화된 사회의식을 드러냈다. ‘왕의 남자’ 흥행이 남긴 의미 있는 키워드를 짚어 본다.

▽기본(基本)=‘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초대박’을 터뜨린 영화들을 통해 충무로에는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제작 기법이 정착됐다. 최고 스타급 배우와 유명 감독을 캐스팅한 뒤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남북문제로 인한 갈등과 화해를 보여 주는 것.

‘왕의 남자’는 이런 조건에 단 하나도 들어맞지 않아 당초 충무로의 예상 관객은 ‘300만 명 선’이었다. ‘왕의 남자’의 성공은 ‘잘 만든 영화는 관객이 반드시 찾는다’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영화의 기본에 충실하라’라는 당연한 원칙을 충무로에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비주류(非主流)=광대라는 비주류 집단의 이야기를 관객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로 받아들이고 폭넓게 반응한 점은 ‘왕의 남자’가 갖는 또 다른 사회학적 의미. 이준익 감독 스스로 “이 영화의 성공은 사회의 비주류가 주류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다수의 관객은 비주류인 광대가 왕 연산을 마음껏 조롱하는 데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동성애가 이 영화를 계기로 유쾌하게 ‘소비’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중층(重層)=‘왕의 남자’는 애틋한 러브스토리로도, 신랄한 정치 풍자극으로도 읽힌다. 관객이 각자의 연령대와 감성 취향에 따라 영화의 핵심 인물을 장생(감우성) 공길(이준기) 연산(정진영) 등으로 다르게 꼽는 것이나 수차례 중복 관람한 관객이 유난히 많은 점도 영화의 이러한 중층 이야기 구조 때문으로 풀이된다.

▽모호(模糊)=‘왕의 남자’에서는 ‘명확한 선악의 대립’이 보이지 않는다. 장생 공길 연산이라는 세 주인공은 물론, 장녹수(강성연)와 내시 처선(장항선)마저도 모두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로 그려졌다. 게다가 장생과 공길은 정말 사랑을 한 것인지, 공길은 장생과 연산 중 누구를 더 사랑한 것인지, 감정선이 모호하게 제시되면서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왕의 남자’에 관객이 열광하는 현상을 두고 “남과 북, 보수와 진보, 우와 좌를 일도양단(一刀兩斷)하는 세태에 염증을 느끼는 관객들이 뭔가를 단정 짓지 않으려는 ‘왕의 남자’의 이야기 얼개를 세련되게 여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유희(遊戱)=‘우리 것이 팔린다’ ‘재미있게만 전달한다면 관객은 전통 코드에도 얼마든지 열렬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특히 한국의 대표 정서처럼 여겨져 왔던 ‘한(恨)’을 뛰어넘어 한국적 ‘놀이 정신’ 혹은 ‘유희 정신’의 가치를 일깨워 줬다는 점은 의미 있다.

그동안 동양의 영화들은 ‘오리엔탈리즘’, 즉 서양인들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동양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이해되고 마케팅돼 왔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이런 틀을 뛰어넘어 ‘코리아니즘’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해외 진출은?

‘왕의 남자’의 해외 진출 전망은 국내에서만큼 장밋빛은 아니다. ‘왕의 남자’는 현재 동남아시아 2, 3개국과 수출 계약을 한 상태다.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필름마켓을 통해 일본 영화 수입업체들이 ‘왕의 남자’를 사겠다는 제안을 해 왔지만 제시된 가격은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는 여느 한국영화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류 스타가 없고 조선시대와 연산군에 대한 일본 관객의 사전 이해가 없어 일본 내 상품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

‘왕의 남자’의 해외 마케팅과 수출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해외 상영판의 경우 영화 도입부에 조선시대와 연산군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자막을 넣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 역대흥행 10
순위제목전국 관객(명)개봉연도
1왕의 남자?2005
2태극기 휘날리며1174만2004
3실미도1108만2003
4친구818만2001
5웰컴 투 동막골800만2005
6투사부일체611만(예상)2006
7쉬리610만1999
8공동경비구역 JSA600만2000
9가문의 위기566만2005
10살인의 추억550만2003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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