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사종]‘낮시간 공연’ 적극 활용하자

  • 입력 2006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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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웨스트엔드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버금가는 영국 뮤지컬의 중심가다. 이곳 웨스트엔드 극장가에서는 낮 시간 공연상품 ‘마티네’가 인기이다.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 ‘우먼 인 화이트’ 등 인기 절정에 있는 공연의 수요 폭증에 따라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틈새시장을 겨냥한 것이 이제는 상례화됐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상대적으로 싼값에 공연을 볼 수 있는 마티네가 인기를 끈다는 소식이다. 대부분 공연예술의 관람 시간이 저녁 시간대인 점을 고려할 때 여가시간대가 다른 가정주부나 학생 공연애호가들에게 시간과 가격, 공간 이동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사실상 ‘공연장의 버려진 시간’이라 할 수 있는 낮 시간을 활용함으로써 공연장의 생산성을 높여 주었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공연장은 시장 실패의 태생적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는 공연 산업의 특성상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국공립 극장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관 주도 공연장은 레퍼토리 개발에는 힘을 쏟았지만 공간 활용이나 관객 개발 등 적극적 마케팅 전략은 부재했다. 따라서 그동안 공연장의 운영 시간대는 관행적으로 저녁 시간에 집중됐다. 특별한 리허설을 요구하는 공연을 제외하고 오전과 낮 시간대는 언제나 버려졌다.

이런 관행을 깬 것이 1990년대 중반 서울 정동극장의 틈새시장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점심식사 후 차 한 잔 마시는 생활 습관과 공연 보기를 결합시켜 만든 ‘정오의 예술무대’와 학생들의 책가방 없는 날 특별활동 프로그램과 연계해 만든 ‘문화특활’ 프로그램, 그리고 오전 11시에 기획된 주부음악회 등은 주요 공연장의 낮 시간 활용 프로그램에 영향을 줬다.

버려진 시간의 적극적인 활용은 사회적 자산인 공연장의 기능을 극대화해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다. 버려져 있던 공연장의 시간과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면 꼭 공연에만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예컨대 여가시간대가 다른 주부들의 모임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장터도 열어 주고 공연도 보여 주면 생활 속에서 문화를 즐기는 풍토를 공연장이 만들어 주게 되지 않을까.

여기에 프로그램만 만들어 놓고 홍보 안 되면 망하는 천수답형 마케팅 전략이 아닌 ‘아파트 부녀회와 자매결연 시 대폭 할인 제시’ 등 수리안전답식 마케팅까지 덧붙인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공연장은 우선적으로 우수 레퍼토리 창작과 보급에 힘써야 하지만 공연예술의 교육적 기능에도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교과서와 연계한 ‘수능 대비 고전 연극시리즈’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공교육과의 결합을 시도한다면 수입도 창출하고 입시생들의 건강한 일탈 출구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초등학생을 위한 상상력 학습 공연 상품을 개발해 교과과정과 같이 병행하는 아이디어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좀 더 튀어 보자. 점심시간에는 인근 직장인에게 공연장을 활짝 개방해 음악과 낮잠을 겸한 ‘품격 있는 낮잠 장소’로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뿐이랴. 공연장의 사회적 임무 가운데 하나가 문화예술과 복지의 결합이다. 공연장의 많은 공연 상품 구매가 불가능한 사회의 소외계층을 위한 배려에 버려진 시간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마티네는 브로드웨이의 상업적 뮤지컬 기획사들이 개발한 틈새시장 마케팅 전략 중 하나다. 우리 공연장들도 운영 방식이 상업적이건 아니건 간에 이러한 노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장사’에서 멀어진 공연장은 관객에게서도 멀어지며 성공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런던에서>

홍사종 경기도 문화의 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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