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200권 이상 도서 구입 ‘책벌레 4人’의 색다른 독서삼매경

  • 입력 2006년 1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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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0.8권. 한국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 4분기 한국인의 서적, 인쇄물 구입비는 월평균 전체 소비 지출액의 0.5%에 불과했다. 이쯤 되면 책에 파묻혀 사는 독서광이 유별나 보일 수밖에 없다. 요즘 ‘책벌레’는 어떤 사람들일까. ‘예스24’ ‘인터넷 교보문고’ ‘알라딘’ 등 3개 인터넷 서점에서 지난해 업무용 책 구매자를 제외한 순수 구매자 중 상위에 드는 독서광들을 뽑아 봤다. 우연찮게도 20∼50대에서 세대별로 1명씩 4명이 뽑혔다. 만화광인 이근우(28·경기 안산시) 씨, 고교 교사 최혜리(38·여·서울 서초구) 씨, 기업가 노창준(48·바텍 대표이사) 씨, 회사원 이현수(52·SK케미칼 중앙연구소) 씨가 그들.》

이들은 모두 연간 200권 이상 책을 사 읽는다. 최 씨는 2000년 이후 인터넷 서점에서만 2200권의 책을 샀는데 거의 다 읽었다고 하니 6년간 하루 1권꼴로 읽은 셈이다. 이근우 씨도 1주일에 만화책 10권 이상, 일반 서적 2권 이상을 읽는다. 지난해 그가 예스24에 올린 리뷰는 모두 224건.

독서광들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다. 최 씨는 “2004년 중반까지만 해도 어린이 책은 출판사별로, 어른 책은 추리 사회과학 인문 등으로 나눠 분류했는데 작년 여름에 포기하고 거실에 ‘책 산’을 쌓고 있다”고 말했다.

노 씨는 “책이 적당히 있을 땐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인 엑세스로 분류해 보관하려고 했는데 1500권을 넘어서면서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후 공기 맑은 곳에 펜션과 무료 도서관을 짓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독서광들이 책을 대하는 버릇도 갖가지다.

“메모하거나 밑줄 그을 때 꼭 연필을 써요. 적을 때나 나중에 다시 볼 때 연필의 아련한 느낌이 좋아서요.”(노창준)

“일반 서적엔 미국에서 사온 늑대 모양의 스탬프를 찍고 만화책은 마음에 드는 대사와 장면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둡니다. 홈피에서 하고 싶은 말 대신 사용하죠.”(이근우)

“책을 사는 즉시 날짜와 구입처, 이름을 적어 두고요. 형광펜으로 밑줄 긋고 포스트잇을 많이 붙입니다. 책에 흔적을 꽤 남기는 편이죠.”(이현수)

“책이 상처 입는 걸 못 봐요. 메모 절대 안 하고 책장을 접는 건 상상도 못 합니다. 펼친 책을 뒤집어 놓는 게 가장 싫은데 남편이 책을 그렇게 벌려 놓으면 반드시 두꺼운 책으로 눌러 원상복구합니다.”(최혜리)

책에 얽힌 기억을 묻자 이근우 씨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내 인생의 책’으로 꼽았다. 어릴 때 증조부가 그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읽어 주던 책이다. “어린 시절의 일이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은 한 구절도 빠짐없이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증조부의 손때가 묻은 이 책의 1982년판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이현수 씨는 “베스트셀러를 피해 다니지만 내가 고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때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책이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다. 한 씨의 여행기를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던 이 씨는 이 책을 남보다 먼저 골라 읽은 뒤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발견의 기쁨’도 누렸다.

책을 읽는 이유도 각기 달랐다.

“살면서 생기는 의문을 풀기 위해”(노창준) 책을 읽는가 하면, “머릿속에 내 마음대로 책 장면을 그려보는 상상의 즐거움”(이근우)이 책 읽기를 부추겼다.

또 “모든 책이 나름대로 말을 걸어오는 게 있어”(이현수) 독서의 기쁨을 누렸고, “남들이 쇼핑, 스포츠를 재미있어 하듯 그저 ‘책 읽기’가 재미있다”(최혜리)는 ‘탐서가’도 있다.

노 씨는 “사업을 하면서 1만 명가량 면접을 봤는데 창의적 인재의 공통적인 특징은 유연한 정신과 학습능력이었고 이 능력은 결정적으로 책 읽기와 관련돼 있다”면서 “책 읽기를 통해 정보보다 더 중요한 사색의 능력과 반추하는 습관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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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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