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암울한 시대 正義 횃불 밝히다…‘조영래 평전’

  • 입력 2006년 1월 1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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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평전/안경환 지음/468쪽·1만5000원·강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스물둘의 젊음을 불길에 내던진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민청학련 사건 수배자 조영래에 의해 꼼꼼하고 완벽하게 복제됐다. 대학 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내려간 원고는 엄혹한 시절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읽히다 1983년 6월 ‘전태일 기념관 건립위원회’를 필자(엮은이)로 해서 출간됐다. ‘전태일 평전’의 표지에 실제 저자의 이름이 인쇄된 책이 출간된 것은 안타깝게도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가 타계한 지 사흘 후였다. ‘전태일 평전’은 196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인간 조건을 다룬 보고서이자, 한 노동자의 깨우침과 실천적 삶을 다룬 불후의 다큐멘터리로 평가받고 있다.

그 ‘전태일 평전’의 작가가 ‘조영래 평전’에서는 주인공이 됐다. 조영래 변호사는 한 시대를 굵고 짧고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학생 시절 3선 개헌 반대운동 이후 민주화 운동의 장정(長征)에 나섰다. 사법연수원 연수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돼 1년 반 동안 투옥됐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돼 6년여 동안 도망다녔다. 1980년 복권 후 사법연수원에 복귀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에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경기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 등을 수행하면서 인권변호사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암울한 독재시대에 인권 변론을 함께한 홍성우 변호사는 매년 12월 12일 조 변호사의 기일이 오면 ‘추모 모임’을 열고 있다. ‘조영래 평전’은 조 변호사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가 ‘추모 모임’으로부터 평전 집필을 의뢰받고 5년에 걸쳐 쓴 작품이다.

1986년 6월 부천경찰서에서 문귀동이라는 경찰관이 서울대 의류학과 4학년 권인숙 씨를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변조해 위장 취업한 혐의로 조사하면서 성적(性的)으로 고문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한밤중 경찰서 조사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조 변호사는 권 씨 사건의 변론문을 밤새워 썼다. 담배 한 개비에 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지필(遲筆)이었다.

‘한 문단을 쓰고는 입술로 읽어 보고 이어 소리 내어 음독한다. 그리고선 다시 펜을 고쳐 잡는다…재판 당일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영래는 심혈을 기울여 가감첨삭, 퇴고를 거듭한다.’

조영래가 집필하고 홍성우 황인철 조영래 세 사람이 읽어 내려간 변론문은 의문문으로 시작한다.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 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 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이 변론문은 ‘전태일 평전’과 함께 조 변호사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가장 탁월한 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헤비 스모커이던 조 변호사는 1990년 12월 12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쓰러뜨린 병명은 ‘시대암(時代癌)’.

저자는 조영래가 살았던 격동의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을 타깃 독자로 삼아 평전을 기술했다고 말한다. 미문(美文)의 법학교수가 재현해 낸 시대상 속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아름다운 사내’의 삶이 꼼꼼하게 복제됐다. 시대의 양심을 온몸으로 구현했던, 그러면서도 편향된 이념의 덫에 빠지지 않았던 ‘통합적 지성’의 면모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조 변호사가 아내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는 이렇게 끝난다.

‘이렇게 저녁 조수처럼 애잔하게, 애틋한 그리움이 밀려오는 순간 속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과 내가 하나로 녹아들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실감하고 있소.’

조영래가 마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뜬 지 15년,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부제)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공동의 기억이 됐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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