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바비컨센터 한국연극 초청 1호 연출가 양정웅

  • 입력 2006년 1월 4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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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기자
김범석 기자
○ 우리가 만든 ‘한여름 밤의 꿈’ 큰일 내다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38·사진) 대표는 올해 ‘꿈처럼’ 꿈을 이룬다.

연극인에게 ‘꿈의 무대’로 꼽히는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의 초청을 받아 6월 27일∼7월 1일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한다. 세계 최정상의 무대인 바비컨센터가 한국 연극을 초청하기는 처음이다.

30대 젊은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이 최초로 바비컨에 가는 것 못지않게 화제인 것은 우리가 만든 셰익스피어 작품을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에 ‘역수출’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바비컨 공연 후 브리스톨의 유서 깊은 올드빅극장을 거쳐 7월 말에는 독일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도 참가한다. 한여름 내내 그는 그렇게 ‘꿈속에서’ 산다.

○ 젊고 가난한 여행자의 꿈

“바비컨은 저에겐 늘 (돈키호테의) 풍차였죠. 돈키호테에 나오는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했고요. 언젠가는 바비컨에 가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꿈이 이뤄질 줄은 몰랐어요.”

지난해 8월, 그와 ‘여행자’는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배우와 스태프 모두 노 개런티로 참여했고 식비를 아끼려고 밥솥까지 싸 들고 갔을 만큼” 무리해서 간 곳. 거기서 그들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본 바비컨센터의 예술감독은 셰익스피어를 한국적으로 재치 있게 풀어낸 솜씨에 반해 그들을 초청했다.

양정웅의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뼈대만 가져왔을 뿐 요정 대신 도깨비가 등장하고 우리 춤과 가락으로 만들었다. 서양인의 눈에는 ‘익숙한 고전 낯설게 보기’가 이 작품의 매력인 셈.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몸 언어와 이미지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양정웅 특유의 작품 색깔도 세계무대에서는 유리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이루어졌다. 어쩌면, 너무 일찍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이젠 더 큰 꿈을 꿔야죠. 솔직히 바비컨 이후로 외적인 성취에서는 좀 자유로워질 것 같아요. 이제는 예술적으로 더 깊이 있고 삶의 성찰이 담긴 작품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 삶과 연극을 향해 떠나는 여행

우리 식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 이 연극은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6월 27일부터 공연된다. 사진 제공 극단 여행자

배우이자 극작가, 그리고 연출가이기도 한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1995년 대학 졸업 후 스페인으로 건너가 다국적 극단에서 활동하며 배우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그가 쑥스러워하며 밝힌 최초의 배우 경력은 고3 때 출연한 영화 ‘젊은 밤 후회 없다’. “어머니에게 시나리오를 부탁하려는 감독의 ‘빽’으로 출연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겸 극작가 김청조 씨가 그의 어머니. 3년 전 작고한 아버지도 동아일보로 등단한 소설가 양문길 씨다. 그 역시 대학(서울예대)에서는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귀국 후 1997년 극단 ‘여행자’를 만든 양정웅은 2003년 ‘이집트 카이로국제실험예술제’ 대상, 문화관광부 선정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지난 연말 본보가 연극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그는 ‘차세대 연출가’ 1위를 차지했고, ‘최고의 실험극 연출가’에서는 대선배들을 제치고 연극계 거목 오태석에 이어 2위로 꼽혔다. 단원 평균 나이 32세인 젊은 극단 ‘여행자’는 ‘미추’나 ‘목화’ 같은 유서 깊은 극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최고의 극단’으로 인정받았다.

‘여행자’의 단원은 30명. 그는 “식구가 많다보니 월급 주고 극단 운영하는 데 매월 2500만원쯤 든다”고 말했다. 연습실도 없고, 대관료 내기도 빠듯한 극단 형편이 그는 늘 아쉽다.

“최소한 5개월만이라도 연습을 충분히 하고 공연하는 게 소원입니다. 정부 지원도 개별 작품 대신 좋은 극단에 대한 장기 지원으로 이어졌으면 하고요.”

‘춥고 배고프다’는 연극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삶은 편해지는데 마음은 더 황폐해지지 않으세요? 영화는 단비처럼 잠시 적셔 위로해줄지 모르지만 연극은 고통스럽게 삶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관객 눈앞에서 고통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땀을 쏟고, 피를 흘리는 것은 오직 연극뿐입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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