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침묵의 소리’ 잘 들을수록 명감독

  • 입력 2005년 12월 3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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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제나 혼자였고 모든 것을 홀로 처리해야만 했다. 모든 팀 개편 작업도 홀로 싸우면서, 혼자 일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59)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지휘봉을 놓은 뒤 한탄한 말이다. 한마디로 선수들과 코치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본프레레는 태평양 한가운데 홀로 떠있는 섬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물론 1차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 하지만 그 이유야 어쨌든 얼마나 답답했을까. 더구나 그는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그래서 에메 자케 전 프랑스축구대표팀 감독 같은 이는 “감독과 선수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외국대표팀 감독을 맡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 나라 말을 못하면서 감독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프로농구 첫 외국인 감독인 인천 전자랜드의 제이 험프리스(43)가 최근 지휘봉을 놓았다. 이유는 3라운드 초반까지 3승 17패의 성적 부진 때문. 구단은 “3라운드 끝날 때(다음달 1일)까지 휴식을 준다”고 했지만 복귀 여부는 불투명하다. 성적이 나쁘면 말이 많이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험프리스도 역시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 것 같다. 일부 선수들은 “같이 운동 못 하겠다”며 트레이드까지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감독과 선수들이 따로 놀았다는 얘기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 말할 수 있다. 리더십의 성패는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정서의 공유, 경험의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게 안 되면 소리가 나게 돼 있다. 험프리스는 선수들과 정서, 경험의 공유에 실패한 것이다. 리더가 팀원들과 정서와 경험을 공유하려면 팀원들의 몸짓 언어를 잘 살펴봐야 한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주목해야 한다. 공식적인 언어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프로농구 국보급 센터 서울 삼성의 서장훈(31)도 최근 안준호 감독과의 불화설로 홍역을 겪었다. 출장 시간과 교체 타이밍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은 것이다. 여기에 서장훈의 아버지까지 안 감독에게 어필하는 바람에 일이 더 꼬였다. 서장훈이 직접 감독과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면 될 일이었다. 더구나 서장훈은 서른도 넘은 프로선수 아닌가. 아버지가 나선 것은 누가 봐도 모양이 좋지 않았다. 안 감독으로서도 결코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결국 서장훈이 안 감독과 면담을 통해 오해를 풀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 대화’일 뿐이다. ‘감정의 앙금’까지 다 가라앉았는지는 두 사람만이 알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술자리가 필요하고 스킨십이 좋은 것이다.

팀원은 파트너다. 그들은 자기 영역 안의 문제는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한다. 리더는 그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만 한다. 오죽하면 ‘현대경영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조직원들을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처럼 취급하고 관리하라’고 말했을까.

리더는 조직원이 말하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말과 말 사이의 ‘틈’을 잘 헤아려야 한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헤아리면 커뮤니케이션은 물 흐르듯이 흐르게 돼 있다. 틈과 간격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끔찍하다. ‘TV 생중계’나 ‘공개 토론회’는 이런 틈새를 용인하지 않는다. 활자는 피도 눈물도 없다. 인간 관계를 강파르게 만든다. 말이나 문자는 팀원들에게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분일 뿐이다.

거수 히딩크 감독이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선수들과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것은 바로 말과 말 사이의 틈새를 잘 헤아리기 때문이다. ‘따뜻한 인간의 얼굴을 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것 이다. 그들은 유머와 스킨십이 풍부하다. 그리고 코치들을 통해 선수들이 ‘미처 못다 한 말’에 늘 귀를 기울인다.

선수들의 말이 끝난 자리, ‘침묵의 소리’를 잘 듣는 감독일수록 명감독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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