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로 선생’ 그를 바라본 25년… 우리 속은 후련했다

입력 2005-11-12 03:01수정 2009-09-30 23:4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나대로 선생’의 ‘나대로’는 ‘내 갈 길을 간다’는 뜻. 이홍우 화백은 ‘나대로 선생’을 통해 25년 세월을 한결같이 권력을 비판하고 서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줬다. 그는 “25년간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만화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얼굴이 왜 그래?’

‘회식하다 불상사가 좀….’

‘맞는 순간 어땠어.’

‘눈앞에 별이 번쩍번쩍하더군.’

1986년 3월 24일자 동아일보 4컷 시사만화인 ‘나대로 선생’은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사건을 풍자했다. 당시 군 장성이 회식자리에서 국회의원을 때린 ‘국방위 회식사건’은 보도 통제로 인해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지 못했다. ‘나대로 선생’이 사건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만화를 그려 놓고 도망갔죠. 다음 날 경복궁 옆 보안사로 끌려가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나대로 선생’의 작가인 이홍우(李泓雨·56·동아일보 국장급 편집위원) 화백은 당시를 회고하며 껄껄 웃었다.

그의 만화 ‘나대로 선생’이 12일자로 만 25년을 맞았다. 1980년 계엄령하에서 시작해 5공, 6공,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동아일보 독자와 함께했다.

그의 펜 끝은 첫 등장부터 날카로웠다. 1회가 게재된 1980년 11월 12일은 계엄하에 정치규제 인사 명단이 발표된 다음 날이었다.

그는 ‘규제 명단에서 빠진 새 인물 인사드립니다’라고 그렸다. 그러나 검열의 벽은 높았다. 3번 퇴짜를 맞고 결국 ‘참신한 새 인물 인사드립니다’로 낙착됐다.

“그때는 검열과의 싸움이었죠. 7번 다시 그린 적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검열을 뚫고 할 말을 해야 했다. 직설적이진 않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야 했다.

1986년 11월 건국대 학생 시위 때 검찰이 학생 1290명을 구속했다. 그러자 그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치우고 돌아오니 다시 수북이 쌓여 있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다. 데모의 ‘데’자도 쓰지 않았지만 잡아넣는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그의 만화 인생은 일찍 시작됐다. 서울 서라벌고 입학 후 학생 잡지에 고정 만화를 기고했고 1967년 서라벌예술대(현 중앙대) 2학년 때는 대전 중도일보에 네 컷짜리 만화 ‘두루미’를, 1973년엔 전남일보에 ‘미나리’를 연재했다.

시사만화를 그리다 보면 당사자들의 항의를 받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2003년 1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비판하는 만화를 그렸더니 노 당선자 측이 발끈하며 만화를 비난했다.

그는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도 비슷한 강도로 비판했는데 노 당선자 측은 마치 보수신문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공격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1997년 당시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를 다룬 만화도 항의 공세에 시달렸다. 당시 신체검사장에서 ‘키가 180cm가 넘는데 왜 몸무게가 45kg도 안 나가나’라는 질문에 ‘대쪽 집안이라 속이 비어 몸무게가 안 나간다’고 대답하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더니 이 후보 측이 발끈한 것.

“윈스턴 처칠이 자기를 비판하는 시사만화를 보고 ‘저 만화만 안 보면 원이 없겠다’고 했지만 실각한 뒤에는 ‘시사만화에 등장하지 않는 정치인은 생명이 끝난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시사만화는 살아있는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고 누구든 예외가 없습니다. 당사자의 항의에 많이 시달릴수록 독자의 호응은 더 높아집니다.”

항의뿐만 아니라 민원(?)도 적지 않다. 특히 정치인의 표정을 좋은 이미지로 바꿔 달라는 민원이 많았다.

“1992년 대선 때 정주영(鄭周永) 후보 측은 만화 속 얼굴에서 검버섯을 빼 달라고 했죠. 이회창 후보 측은 안경이 세모꼴이라 너무 날카롭게 보인다고 했고 김종필(金鍾泌) 전 자민련 총재는 늘 ‘토끼 이빨’로 그린다고 바꿔달라고 했어요. 물론 민원을 들어준 적은 거의 없습니다만.”

세상 돌아가는 데 대한 그의 눈은 놀랍도록 날카롭고 정확하다. 그의 풍자가 현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6대 국회에서 자민련이 17석으로 교섭단체를 못 만들자 ‘3명 꿔오면 되지’라고 그렸는데, 그해 말 정말 국민회의 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이적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후 노사모 대신 노사팔(노 대통령 사돈의 팔촌)이 뜬다’는 만화는 “없는 사실을 그린다”는 항의를 받았지만 몇 달 뒤 실제로 노 대통령의 형 노건평(盧健平) 씨의 공직자 인사 개입 파문이 터졌다.

그가 만든 유행어도 적지 않다. 올여름 회자됐던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도 7월 9일 이 화백이 처음 사용했다. 이후 손학규 경기 지사 등 여러 정치인이 언급했고 노 대통령은 8월 25일 KBS 1TV ‘참여정부 2년 6개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듣는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러분 ‘경포대’란 말을 들어보셨겠지만 저는 매일 경제를 들여다봅니다”라고 스스로 해명하기도 했다.

조기 퇴직을 풍자한 ‘삼팔선’(38세도 선선히 사표를 받아준다)이나 ‘개코같다’(개혁 코드 같은 사람 다 모이자) 등도 이 화백이 만든 유행어다.

시사만화라도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시사를 강조하다가 만화의 재미를 놓치면 독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것. 재미를 위해 그는 항상 최신 유행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일간지는 물론 스포츠지 경제지를 섭렵하고 젊은이들의 유머 감각을 알기 위해 ‘개그콘서트’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 TV 코미디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본다. 영화도 물론이다. 늘 긴장하다 보니 담배를 하루에 3갑이나 피운다.

“재미가 있으려면 사건을 한 번 비틀고 그 내막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만화가 밋밋하면 글과 똑같죠.”

그는 이야기 구성력, 만화적 반전 등을 두루 갖춰야 하는 4컷 시사만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내 만화 인생도 4컷짜리 기승전결로 보면 ‘결(結)’쪽으로 가는 시점이지만 4컷 만화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만화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이홍우 화백은…▼

△1949년 부산 출생

△1967년 중도일보 ‘두루미’ 만화 연재

△1973년 전남일보 ‘미나리’ 만화 연재

△1980년 동아일보 ‘나대로’ 만화 연재 시작

△2000년∼현재 시사만화가회 회장

△2001년 제1회 고바우 만화상 수상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주요기사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