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파멸로 달리는 미친 고양이의 얼굴… 연극 ‘고양이 늪’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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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극단 물리
사진 제공 극단 물리
배우가 작품에 푹 빠져 있을 때면 얼굴에서 광채가 난다던가? 내달 1∼13일 공연되는 연극 ‘고양이 늪’에서 주연을 맡은 서이숙(37)이 꼭 그랬다. 풍부해진 표정과 함께 실제로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고양이 늪’은 아일랜드 출신의 스타 희곡 작가 마리나 카의 대표작이자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카의 작품이다. 올해 두드러진 작품이 없었던 연극계에 모처럼 선보이는 무게 있는 대극장용 연극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작품의 무게 때문인지 흔히 2주 전쯤 시작하는 ‘런 스루’(실제 공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가는 연습)를 한 달째 진행 중인 ‘고양이 늪’ 연습실을 24일 찾았다.

○ 서이숙, 극단 미추서 물리로 10년 만에 외출

“내가 원했던 건, 내 눈을 들여다보며 날 파악하는 게 아니라 날 이해하려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 당신은 왜 날 비판하기에 앞서, 내가 누구보다 더 가혹하게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 주지 않았을까?”

“알았어, 너를 나처럼 되게 하진 않을 거야. 평생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진 않아. 왜냐면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으니까….”

텅 빈 연습실은 170cm의 몸에서 뿜어내는 서이숙의 광기와 에너지, 그리고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찼다. 극이 정점을 향해, 그리고 파멸로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동안 연습실에는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연습이 끝난 뒤에도 그는 감정에서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듯 눈가가 불그레했다. 연일 계속된 연습 때마다 울어서 그런지 눈은 부어 있었다.

“감정 소모가 많아 힘들겠다”는 말에 그는 “하지만 배우로서는 오히려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말했다.

극단 ‘미추’의 단원인 그가 ‘미추’ 작품이 아닌 다른 극단(‘물리’)의 무대에 서는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매년 이맘때면 ‘미추’의 고정 레퍼토리인 마당놀이 준비에 들어가야 함에도 그는 이 작품의 매력에 빠져 ‘10년 만의 외출’을 결심했다.

“여배우가 탐낼 만한 모든 감정이 들어 있는 작품”이라는 그의 말처럼, 여주인공이 극을 거의 이끌어 나가야 하는 이 작품에는 사랑, 배신, 집착, 광기, 죽음, 그리고 숙명 같은 원죄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30대 후반의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작품 폭이 넓지 않은 만큼 이 연극을 탐낸 여배우가 많았다는 후문. 하지만 극단 물리의 연출가 한태숙 씨는 다른 배역은 모두 오디션을 통해 뽑았지만 주인공 ‘헤스터’ 역만큼은 오디션 없이 서이숙을 택했다.

“처음부터 서이숙이라는 배우를 생각하고 시작한 작품이에요. 여성과 남성의 에너지를 함께 지닌 여배우를 쓰고 싶었는데 서이숙만 한 배우가 없죠.”

○ 여성 작가-여성 연출가-여배우가 만든다

‘고양이 늪’은 에우리피데스의 고대 그리스 비극 ‘메디아’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낸 작품. 주인공 헤스터는 늪지대에 살지만 떠돌이 여인의 사생아로 태어난 탓에 늘 아웃사이더다. 헤스터는 자신처럼 사생아인 딸을 낳는다. 딸의 아버지는 헤스터를 배신하고 좋은 집안의 딸과 결혼하려 하고 헤스터의 분노는 결국 처절한 파멸을 불러온다는 내용.

경쾌한 결혼식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강렬하고 감정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작품.

그리스 신화의 인물인 ‘메디아’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짐작이 가능한 이 연극의 ‘충격적인 결말’은 마치 늪처럼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으로 한동안 관객에게 달라붙을 듯하다.

연출가 한 씨는 “관객들이 부디 충격을 받은 듯 멍한 상태로 극장을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화∼목 7시 반, 토 4시 7시 반, 일 3시. 1만5000∼3만 원.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구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02-744-7304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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