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몸 이야기]<11>현악기 연주자들의 ‘왼손’

  • 입력 2005년 10월 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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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가 ‘손가락 통증’을 이유로 공연 당일 연주를 포기해 다른 날로 표를 바꿔 주는 소동을 빚었다. ‘손가락 통증’의 원인은 왼손 둘째손가락의 인대가 늘어났기 때문. 이에 대해 바이올리니스트들은 “가끔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 연주를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입는 것은 대부분 왼손”이라고 말한다.

현악기 연주자들은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모두 왼손으로 지판(指板)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활을 켠다. 그래서 손가락에 관한 한 왼손이 ‘수난’을 당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오른손에 비해 왼손에 굳은살이 더 박이고, 물집도 많이 생기며, 모양도 더 밉다.

첼리스트 여미혜 씨는 “현악기 연주자의 손은 발레리나의 발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현악기 중에서도 첼로나 더블베이스의 현은 굵기 때문에 손끝에 힘을 주다 보면 손이 완전히 개구리 발 모양으로 변해간다”고 말했다.

현악기 중 가장 현이 굵은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은 대부분 왼손이 오른손보다 크다.

서울시향의 베이시스트 김후영 씨는 “30년 가까이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다 보니 왼손가락이 오른손가락보다 늘어났다”며 두 손을 맞대어 보여 주었다. 실제 육안으로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왼손가락들은 오른손가락들보다 0.5∼1cm가 길었다.

현악기 연주자들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면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반지를 오른손가락에 끼고 있다는 것. 결혼반지도 왼손 약지가 아닌 오른손 약지 차지다.

“반지를 끼면 연주할 때 불편해서 양손 모두 반지를 잘 안 끼는데 결혼반지만큼은 신랑이 서운해 할까봐 오른손에 낀다. 그나마 활을 잡는 오른손가락이 왼손보다 좀 자유로우니까. 연주할 때는 팔찌나 시계도 절대 안 찬다.”(서울시향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용 씨)

현악기의 경우 가장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손톱 밑의 가장 두툼하고 살이 많은 부분으로 현을 눌러 줘야 한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손톱을 최대한 짧게 깎는다. 하지만 공연 전날에는 손톱을 깎지 않는 연주자가 많다.

김후영 씨는 “자칫 너무 짧게 깎아 손톱과 살 틈이 벌어지면 연주할 때 아프기 때문에 2, 3일 전 손톱을 미리 깎고 연주회 전날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악기 연주자, 특히 여성 연주자 중엔 손 좀 보자고 하면 “못생겼다”며 슬그머니 뒤로 감추는 사람이 많다. 손톱 치장은 꿈도 못 꾸고, 울퉁불퉁한 마디에 굳은살이 박인 손. 그러나 ‘미울수록 더 아름다운’ 것이 바로 현악기 연주자의 손이 아닐까?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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