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선물/현장에서]초고가 선물세트 안팔리는 까닭은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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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용 선물로 1000만 원이 넘는 고가(高價) 선물세트를 내놓은 백화점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경기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부유층의 선물 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준비했는데 좀처럼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추석선물용으로 1500만 원짜리 와인세트를 내놨으나 아직 팔지 못하고 있다. GS스퀘어 백화점의 1200만 원짜리 프랑스산 코냑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밖에 200만 원짜리 굴비세트, 은공예 용기에 담은 400만 원짜리 멸치세트 등도 고작 1, 2개 팔리는 데 그쳤다.

유통업계에선 고가 추석 선물세트 판매가 부진한 데 대한 원인 분석이 한창이다.‘고소득층의 취향 변화를 알아보지 못했다’, ‘고소득층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그중에서 백화점 바이어들의 중론은 ‘로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 모아졌다.

고가의 명절 선물을 사는 사람들의 직업은 대부분 ‘사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물은 사업상 이해관계가 있는 공무원이나 거래처 임원의 주소지로 배달된다는 것이다.

고가 선물 판매가 부진한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추석을 앞두고 선보인 고가의 와인 코냑 선물세트는 대부분 작년 추석이나 올 설을 겨냥해 선보였던 제품이다. 이 제품들이 팔리지 않자 추석용 선물세트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재고 선물세트인 셈.

이에 대해 백화점들은 “명절 분위기 조성용으로 홍보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부모들은 ‘사회가 투명하면 잘 사는 세상이 된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백화점에는 안된 일이지만 ‘비싼 선물이 팔리지 않는다’는 말은 이런 점에서 반갑게 들린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K부장은 “고가 상품 판매가 부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5만∼10만 원짜리 중가 선물세트가 잘 팔리지 않아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여전히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K부장은 “쓸 돈이 있어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백화점에 못 간다는 푸념을 자주 듣는다”고 귀띔한다.

고가 선물세트는 판매가 부진해도 상관없지만, 정성을 담아 전하는 조그만 추석선물은 주고받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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