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의 세상속으로]여성성은 나의 힘

  • 입력 2005년 8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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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같은 이름 때문에, 혹은 때론 날이 선 비평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강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편이 웃으면서 가끔 그런다. 나만 만나면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휘어잡고 사는지 제일 궁금해 한다니까(근데 정말 휘어잡고 사시기는 하나요?).

강한 여자. 스스로는 강한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어떤 남자 앞에만 가면 아주 여성적이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준다. 예를 들면 지도교수 앞에 가면 단 한마디도 제대로 못할 때가 비일비재하고, 좋아하는 선배 앞에서는 실실 쪼개면서 손을 비비 꼬기도 한다. 섬세한 남자들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여성적이 되는 것이다.

여성성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뻑뻑한 대인관계에 윤활유가 되고, 미소는 가장 좋은 화장술이 된다. 물론 여성성을 활용한다는 게 자동차 세우려고 치마 올리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이혼 후 혼자 사는 내 친구는 이렇게 한탄했다.

“있지. 예전에는 말야. 내가 못을 20개 박으려면 남편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아. 나 혼자 쾅쾅 10개 박은 후에 남편한테도 10개 박으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 이 남자가 1개도 안 박았어. 근데 이제 알게 되었다니까. 처음부터 못을 단 1개도 못 박는다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면, 이 남자가 10개는 박는다는 것을 말야.”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 고개를 끄떡이며 나도 말했다. “난 말야, 이렇게 해. 일단 못을 10개만 박자고 해. 그리곤 나도 너처럼 못을 못 박는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 대부분의 남자는 한 5개는 박아줘. 그러면 ‘아…당신 덕분에 못 박는 법을 알게 되었고, 넘 재미있다’고 하면서 10개를 열심히 박아. 그러면 가만히 서 있던 남자는 나머지 5개는 저절로 박는 거야. 근데 처음부터 10개 박는 거하고 뭐가 다르냐고? 단번에 또 하거든.”

이렇게 말해 놓고 나니, 뭐 나란 사람이 여성성을 꽤 조작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은데…그렇지 않다. 나는 치마 입는 것도, 딸의 머리를 빗겨 주는 것도 고추장 담그는 것도 좋아한다. 다만 누군가와 함께 이 일을 할 때 더 힘이 나고 신이 날 뿐이다.

그렇다면 전형적인 마초 아저씨들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고백하자면, 분명 여성성이 대인관계의 양념이라고 심리학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도, 그게 언제 내 안에 있었느냐는 듯 사람이 달라져 버린다. 일례로 전에 모 영화사 사장과 우연히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주는 폭탄주를 단 한 잔도 거절하지 않고 물처럼 마셨다. 여유 있게 손까지 흔들고 돌아서자마자 다 토한 후, 길거리에서 잘 뻔한 것은 물론이다. 훗날 지인으로부터 그 역시 나와 헤어지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는 소리를 듣고 씩 웃었다.

그러니 어느 책 제목에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라는 것이 있던데, 나는 정반대를 주장하고 싶다. ‘여자처럼 일하고, 남자처럼 승리하라.’

여성성은 나의 힘! 아니. 여성성도 나의 힘이다.

임상심리학박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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