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86년 인도聖者 라마크리슈나 사망

  • 입력 2005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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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누구도 갈 수 없었던 내면의 바다로 가는 길을, 존재의 고향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영혼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신과 대면했다.”(로망 롤랑)

붓다, 샹카라차리야와 더불어 인도의 3대 성자로 꼽히는 라마크리슈나.

그는 벵골 지방의 가난한 농부였다. 학교 교육도 받지 못했다.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몰랐다. 평생 벵골어의 거친 방언으로 말했으며 영어도 산스크리트어도 몰랐다.

신을 배우기보다는 체험하기를 원했던 라마크리슈나. 그는 그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고 신의 본질을 깨달았다.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신을 보았다.

20세기 들어 그의 사상이 전 세계에 알려졌을 때 서구의 지성들은 요동한다. 롤랑은 그의 전기를 썼고 올더스 헉슬리는 그의 성언집에 서문을 썼다. 막스 뮐러는 서구 사회에 그를 알리는 데 진력한다.

그의 가르침은 어느 특정 종교를 전도하는 게 아니다.

수행 중에 힌두교의 제신(諸神)을 보았으며 알라와 예수를 경험하였던 라마크리슈나. 그는 모든 종교를 인정하고, 그 종교들이 궁극적으로 동일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교리에 신경 쓰지 말라! 교의와 종파, 교회와 사원에 신경 쓰지 말라!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신을 알고 있으니 그것은 모두 맞는 것이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치하의 인도에서 힌두교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라마크리슈나. “그는 인도의 정신이 가장 저조할 때에 태어나 인도의 모든 정신 유산을 구현했다.”(타고르)

그러나 그는 행동의 실천가는 아니었다. 그의 내면생활은 격렬했으나 삶은 평범했다. 시대의 외각에서 소리 없이 살다 갔다. 그는 어떤 조직도 세우지 않았다. 체계적인 교의나 신조도 만들지 않았다. 저서도 남기지 않았다.

명상의 지식이 아니라 절실한 침묵을 통해 궁극의 지혜에 이르렀던 라마크리슈나.

그는 신만이 진실이며 다른 모든 것은 환(幻)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물질주의에 찌든 서구는 자신이 가진 인형에 온통 눈을 빼앗긴 갓난아이로 비쳤다. “문명이란 소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가르침, 그 깨달음의 요체는 ‘포기’에 있다. 포기 없이는 영성이 찾아오지 않는다. 포기에 의해서만 불사(不死)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어느 날/그대 영혼의 창호지 문살에/새벽 기운이/소리 없이 가득히/물들어 오는 것을 느낄 터이니…”.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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