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화단 선구자 춘곡 고희동 40주기… 서울대박물관 특별전

  • 입력 2005년 7월 1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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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곡 고희동(春谷 高羲東·1886∼1965·사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고등학교 미술교과서에까지 등장한다. 그는 식민지 시절인 1918년 서화협회를 창립하고 서화협회전을 주도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과 대한미술협회장 등을 지낸 근 현대 화단의 선구자다.》

그러나 정작 그의 삶과 작품 세계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남긴 작품들이 별로 없고 일생 동안 단 두 번 개인전을 연 데 그쳤다는 점도 있지만, 1915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에 ‘가야금 타는 미인’을 출품했다는 전력도 원인이 됐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박물관(관장 김영나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이 13일∼9월 10일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고희동 40주기 특별전’은 현대에 들어와 잊혀진 인물이 된 한 선구화가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뜻 깊은 전시다.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수식어에 묻혀 소홀히 취급되었던 그의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기회다.

고희동은 21세 때 소림 조석진과 심전 안중식 문하에 들어가 처음 화필을 잡았고 그 후 일본 유학을 하면서 유화를 그렸지만 귀국 이후에는 동양화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따라서 그의 서양화 작업은 유학시절에만 집중되었으며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1954년 작 ‘춘산람취도(春山嵐翠圖)’. 신록이 눈부신 북한산과 도봉산 연봉을 즉흥적 필치로 그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서양화도 단 두 점의 자화상뿐. 일본 도쿄예술대학미술관 소장 ‘정자관(程子冠·선비들이 평소에 쓰던 말총으로 만든 관)을 쓴 자화상’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다.

1915년 일본 도쿄예술학교 졸업 작품인 ‘정자관을 쓴 자화상’. 사진 제공 서울대박물관

비록 서양화는 단 두 점이지만, 이번에 유족들로부터 나온 60점의 미공개 동양화는 그가 단지 ‘최초의 서양화가’가 아니라 ‘근대와 현대를 이은 최초의 화가’라는 새로운 평가를 가능케 한다. 그는 대상에 대한 성실성과 박진감 있는 묘사, 음영법, 인상파적인 점묘와 수채화 같은 청 홍색 담채 사용을 통해 서양화적 기법과 정신을 동양화에 옮겨 보려고 시도했다.

개울가에서 부부가 빨래하는 ‘청계표백도(淸溪漂白圖)’나 작가가 69세 때인 1954년 5월 신록이 눈부신 북한산과 도봉산 연봉을 보고 느낀 감상을 즉흥적 필치로 그린 ‘춘산람취도(春山嵐翠圖)’가 대표적이다.

전통 동양화를 충실히 계승한 ‘미전배석도(米顚拜石圖)’와 ‘아회도(雅會圖)’도 볼 만하다. ‘미전배석도’는 북송 때의 유명한 서화가 미불이 좋은 돌을 보면 절을 했다는 고사를 표현한 그림. 인물과 돌, 나무 표현 등에서 장승업에서 유래해 안중식, 조석진에 의해 구사되던 화풍이 완연히 드러나 있다. ‘아회도’는 평소 술과 손님을 좋아해 그의 사랑방을 찾은 당대 문화인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1915년 작 ‘청계표백도(淸溪漂白圖)’.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부부의 모습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간송미술관, 통도사 성보박물관 등에서 빌려온 것까지 모두 70점이 나온다. 15일 오후 2시 서울대박물관 강당에서 미술평론가 이구열 씨와 진준현 서울대박물관 학예관이 주제 발표를 하는 학술강연회도 열린다. 02-880-8092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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