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문화예술에 빠졌어요”

  • 입력 2005년 7월 4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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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도 문화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다. 3월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발레 ‘해적’에 단역인 ‘상인들’을 맡아 무대에 선 기업 CEO와 의사, 고위 공무원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문화예술계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도 문화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늘고 있다. 3월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발레 ‘해적’에 단역인 ‘상인들’을 맡아 무대에 선 기업 CEO와 의사, 고위 공무원들이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색소폰 부는 사장, 책 나눠주는 최고경영자(CEO), 오페라 공부하는 대표이사….최근 문화예술계 후원의 선구적인 기업가로 불려온 박성용 한국메세나협회장(금호아시아나 그룹 명예회장)의 타계를 계기로 문화예술계를 음으로 양으로 후원하는 재계 CEO들의 활동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스스로 즐기기 위해 시작한 문화예술활동이 경영철학, 문화예술계 후원으로 확장된 CEO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 직원들, 레슨비 100만 원

경남 창원의 철강업체인 경남스틸의 최충경(59) 대표이사는 1996년부터 아마추어 재즈 연주단인 ‘실버 재즈 오케스트라’의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경남 유일의 재즈 연주단체 ‘경남 재즈 오케스트라’에 악기와 연주복, 음향기기 등을 10년째 지원하고 있으며 마산지역 청소년들로 구성된 ‘마산관악합주단’에도 1990년부터 총 8000만 원 이상을 후원했다.

경남스틸 직원들은 앞으로 예술 관련 특기를 한 가지씩 갖지 않으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올해부터 미술 음악 등의 레슨을 받을 경우 매년 1인당 100만 원 범위 이내에서 회사가 레슨비를 지급하기 때문.

○ 직원회의에서 시 낭송, 독학으로 오페라 고수

우림건설 심영섭(49) 대표이사는 학창시절 문예부장을 도맡아 지낸 ‘문학청년’ 출신. 1996년부터 ‘책 나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매달 한 권씩 ‘이달의 책’을 선정해 임직원과 협력업체, 고객들에게 1700여 권을 전달한다. 이 회사에서는 주간 월간 회의 때도 ‘임직원 시낭송’을 꼭 한다.

세아제강 이운형(58) 회장은 1999년 지인인 박수길 당시 국립오페라단장에게서 “국립오페라단이 재단법인으로 바뀌는데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다급한 부탁을 받았다. 이 회장은 ‘할 바에야 이름만 걸 것이 아니라 오페라를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승낙했다. 이후 이 회장은 책, DVD 등을 통해 오페라를 독학했다.

정은숙 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이 회장은 소리 없는 고수”라고 평했다. “의견을 물으면 무대 장치에서 가수들의 역할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지적해 내세요.”

○ 공연 뒤 쫑파티…“공연기획사 세액공제 해줘야”

지난달 30일 대학로의 한 음식점.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공연 ‘컨템퍼러리 셀러브레이션’이 끝난 뒤 이 공연을 관람한 CEO 24명과 유니버설 발레단원 120명이 모여 와인을 곁들인 ‘쫑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CEO들은 올 4월 결성된 ‘와인&컬처’ 멤버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주최한 와인공부 모임을 통해 알게 된 CEO들이 부정기적으로 모여 발레 오페라 등 공연을 함께 보고 단원들에게 ‘쫑파티’를 열어 준다.

회장은 한형석(59) 마니커 회장이 맡고 있으며 김수근 삼성인력개발원 부원장, 민남규 자강산업 회장, 박인순 스파이렉스사코 사장, 이영덕 영우캠텍 사장, 하창조 ENI 사장, 강용현 동원증권 부사장 등이 멤버다.

한미회계법인 김성규(42) 대표이사는 오페라 뮤지컬 연극 관현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공연 탐험가’. 1997년 서울예술단의 의뢰로 재무 컨설팅을 실시한 것이 계기가 돼 세종문화회관, 고양문화재단, 충무아트홀, 경기문화재단 등에 대해 틈나는 대로 재무 및 회계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문화관광부가 개최한 ‘기업의 문화예술 소비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문화예술 기부에 대한 세액공제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 차기 메세나협회장 누구에게?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풍토를 확산해 온 주체는 메세나협회. 당연히 박 회장의 대를 누가 이을까는 문화예술계의 큰 관심거리다. 현재는 부회장 중 최고 연장자인 김용원(70) 삶과꿈 대표를 중심으로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보험 회장,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본 사장,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등 다섯 사람이 공동 협의로 협회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박찬 메세나협회 사무처장은 “박 회장의 1주기가 지난 뒤에야 새 협회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와 문화예술계에서는 부회장들 외에 메세나협회 이사를 맡고 있는 박영주(64) 이건산업 회장이나 윤윤수(60) 휠라코리아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취임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박 회장은 최근 전국 6개 도시에서 순회 개최되는 클래식과 재즈 콘서트인 ‘이건 음악회’ 개최 공로 등을 인정받아 독일 몽블랑문화재단이 선정하는 ‘몽블랑 예술후원자 상’을 받기도 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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