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세계여성학대회 ‘돌봄노동’ 조명

  • 입력 2005년 6월 27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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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끝났다. 여성의 ‘돌봄노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19∼24일 잔치의 큰 성과였다.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의 얘기다. 때마침 출범한 여성가족부가 ‘돌봄노동’을 사회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천명했다.

돌봄노동이 무엇이기에. 어린아이를 보호하고 늙은 부모를 살피고 병에 걸린 식구를 간호하고…. 뭐가 문제인가. 이 대회에 참석한 낸시 포브르(52)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지은희(58·전 여성부 장관) 상지대 여성학 교수, 조은(59)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가 ‘여성과 돌봄 노동’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좌담은 포브르 교수가 대회 기간 중 머무른 이화여대 한우리기숙사 로비에서 이뤄졌다.》

▽조은=낸시 포브르 교수는 미국 여성주의 경제학의 대표적 이론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제학자로서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낸시 포브르=미국뿐 아니라 선진국들은 대부분 1980년대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갔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가족위기와 환경문제가 등장했습니다. 가족을 돌보는 일은 시장 밖에 있지만 시장에 영향을 줍니다. 환경, 깨끗한 물 같은 것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듯이 말입니다. 돌봄노동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은희=그런 점에서 각 학문에서 여성주의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여성학과 여성운동은 그동안 이슈를 끌어내 법제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학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포브르=가부장제는 여성의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의 비용을 줄이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또 그동안 경제학자들은 가정을 단지 생산 없는 소비단위로 개념화했고요. 그러나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을 대체하려면 돈이 듭니다. 또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요. 감정이 개입된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돌봄’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심장(가슴)’에 의해 유지된다고 표현했습니다. 제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요.

▽지=한국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문제가 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전업주부에 대한 보상금으로 일일노동자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재산분배청구권 문제가 불거졌고요. 이제 돌봄노동을 여성들이 더는 맡으려 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에 따라 집에만 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도 여성인력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요.

▽조=가족이 이타주의에 의해 유지되고 시장은 이윤에 의해 운영된다고 생각되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가족간에도 이해관계가 부닥치고 시장도 이익을 추구할 뿐 아니라 정을 나누기도 하지 않습니까. 돌봄노동을 여성에게만 맡겨 두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라고 한다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포브르=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위기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또 돌봄노동을 시장논리에만 맡기면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생각해 봐야죠.

▽지=한국사회는 장시간 노동이 문제입니다. 돌봄노동이 가족간 남녀간에 배분돼야 하지만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교육을 통해 가부장적 인식을 바꾸고 남녀가 돌봄노동을 함께 하도록 해야 합니다. 지역사회는 공동육아운동 같은 것으로 분담해야 하고요. 보육의 공공성 강화가 중요하지만 경제논리를 앞세우는 학자나 관료들은 보육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 태어났건 아이는 똑같이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나야 합니다.

▽포브르=시장에 맡기면 질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운영자 측에서는 비용을 줄이려 하고 부모는 적게 부담하려고 하니까요. 미국도 4세 이하 아동 중 15%를 영리기관에서 맡고 있을 뿐입니다. 시장논리로 하려면 소비자권이 발동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소비자권을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죠.

▽지=직장인이 직장과 가족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가족친화적 정책이 필요합니다. 노동의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세계화는 점점 경쟁논리를 강화해 노동환경을 악화시킵니다.

▽조=여성의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에 그치지 않고 경제정책 전반의 패러다임을 경쟁이 아닌 돌봄으로 재편해야 합니다. 흔히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표현되는 경쟁적 패러다임은 나의 생존이 다른 사람의 생존과 연결돼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새롭게 짜여야 합니다.

정리=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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