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인 디스 월드’

  • 입력 2005년 6월 24일 05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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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백두대간
사진제공 백두대간
파키스탄 난민캠프에서 이란과 터키 그리고 이탈리아를 거쳐 천신만고 끝에 런던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소년 자말은 식당에서 불법노동자로 일하던 틈을 타 파키스탄으로 전화를 건다. 자신과 함께 길을 떠나 왔던 사촌형 에나야트의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해서다. 전화 건너편에서 에나야트의 아버지쯤 되는 사람의 목소리가 묻는다. 형은 어디 있느냐고. 너처럼 네 사촌형도 잘 있느냐고. 자말은 담담하고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에나야트는 없다고. ‘이 세상에(in this world)’ 지금 없다고.

마이클 윈터바텀의 2003년작 ‘인 디스 월드’는 보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영화다. 세상 속에서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아예 눈을 감고 싹 외면하든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런던까지 그 고행의 여정을 동반 취재했던 윈터바텀의 생각은 적어도 그런 것이다. 세상이 이 지경인데 중간이란 게 과연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 도대체 적당하고 알맞은 중용(中庸)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뿐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고 윈터바텀은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윈터바텀의 외침은 아주 조용하다. 그의 목소리는 늘 가슴 저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목구멍 언저리 어딘가에 콱 막혀 버려서 한동안 숨도 못 쉬게 하고 또 말도 못하게 만든다. 윈터바텀은 자신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차라리 울지도 못하게 만든다.

자말과 에나야트는 불법이민 외국인 노동자란 이유로 터키의 한 공장에서 실컷 착취만 당한다(어쩌면 터키와 한국은 그런 점까지 비슷하게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공장 주인은 결국 이 둘을 터키 인신매매 마피아에게 팔아넘긴다. 아무것도 모르고 드디어 런던으로 가게 됐다고 좋아라 하던 사촌형 에나야트는 좁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의 오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질식사하고 만다. 이탈리아에 혼자 버려진 자말은 거리에서 소매치기까지 하며 살아간다. 그리곤 결국 다시 자신의 본래 목적지였던 런던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자말로 하여금 자신을 런던으로 몰아가게 하는 건 에나야트가 죽기 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목소리다. 에나야트는 컨테이너 바깥사람들, 그러니까 세상의 바깥사람들을 향해 제발 제발 문을 열어 달라며 소리쳤다. 자말의 귓가에는 에나야트의 그 울부짖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자말을 런던까지 이끈 건 에나야트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자 애정, 그리고 무엇보다 에나야트를 그 지경으로까지 만든 세상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아무리 힘든 여정이었어도 자말은 어린 소년답게 웃음을 잃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참자고, 오히려 형인 에나야트를 격려했다. 아무리 낡은 공이라도 이란에서든, 터키에서든, 난민 캠프에서든 그때그때 아이들과 편을 짜서 축구를 즐겼던 아이가 바로 자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소망했던 런던에 도착한 자말의 표정엔 언제부턴가 웃음이 사라져 있다. 그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축구도 하지 않는다. 그에겐 오로지 기억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촌형 에나야트에 대한 기억. 자신들을 버린 세상에 대한 기억.

‘쥬드’로부터 시작해 ‘원더 랜드’와 ‘24시간 파티 피플’ 그리고 이번의 ‘인 디스 월드’까지 진실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온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바로 그 다양한 영화를 만들면서도 한 가지 주제, 그러니까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끝까지 지키려 해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또 존경받아야 할 인물이다. 고백컨대 지금의 현대 감독 가운데 마이클 윈터바텀 같은 인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 디스 월드’가 재미없는 영화 같다고? 볼 수 있는 극장이 많지 않다고? 그건 모두 당신의 핑계일 뿐이다. 세상을 구하기를 원하고, 세상 속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한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결코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7월 8일 개봉. 15세 이상.

오동진 영화평론가·동의대 영화과 교수 ohdjin@hotmail.com

p.s. 연재를 끝내면서

영화를 분석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껴안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했다는 반성,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영화를 통해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화 때문에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영화 때문에 행복하기를, 진실로 진실로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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