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난해한 현대미술 100년 흐름 머리에 ‘쏙’

  • 입력 2005년 6월 17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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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시를 보기 위해 많은 학생이 몰렸다. 교과서에 실린 유명 작품이 많이 전시되고 있어 현대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 제공 덕수궁미술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시를 보기 위해 많은 학생이 몰렸다. 교과서에 실린 유명 작품이 많이 전시되고 있어 현대 미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 제공 덕수궁미술관
텔레비전 화면 속에 한 여자가 서 있다. 흰색 구두에 회색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쓴 그녀는 뭔가를 계속 ‘시도’하고 있다. 다름 아닌 거대한 코끼리의 등 위에 올라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는 강해 보이지 않는다. ‘올라타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반자포자기 심정이 느리고 소극적인 행동에 담겨 있다.

여자의 의미 없는 행동과, 현실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 설정에 갸우뚱하지만, 3분 동안 계속되는 반복적인 행동이 문득 현대인의 지루한 일상과 일탈에 대한 욕망을 은유한 듯한 느낌이 든다.

‘구두’와 ‘정장’은 제도와 일상이 주는 억압이고 코끼리 등에 올라타려는 시도는 억압에서 탈피하고 싶은 욕구다. 그러나 화면 속 주인공처럼, 우리의 ‘의지’는 늘 그렇게 소극적이고 ‘시도’는 그저 반복적으로 좌절될 뿐이다.

이것은 네덜란드 비디오 작가 리자 메이의 비디오 작 ‘시도(trying)’라는 작품이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의 제4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리자 메이의 비디오 작 ‘시도’(1999년). 정장 차림으로 코끼리 등 위에 올라타려고 반복적이지만 소극적으로 시도하는 여인의 모습은 ‘열망하지만 실패를 반복하는 현대인의 삶’을 은유한다. 사진제공 덕수궁미술관

리자 메이는 ‘열망하지만 실패를 반복하는 현대인의 삶’을 은유하는 비디오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비디오 아티스트. 그의 작품 옆에는 역시 비디오 아트의 거장이라 불리는 빌 비올라, 더글라스 고든, 브루스 나우만, 게리 힐 등의 대표 영상작품들이 선보인다.

8월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미덕은 그동안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세계 유명 작가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흔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현대미술의 100년사를 한꺼번에 훑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으로도 관람을 권할 만한 전시다.

1전시장에서 맨 먼저 만나는 조르주 브라크와 피카소, 몬드리안, 페르낭 레제의 그림은 ‘추상주의’의 대표작들. 브라크와 피카소의 작품에선 평면에 3차원적 입체공간을 구현하려 했던 작가들의 치열한 상상력이 엿보인다. 숲을 극도의 단순화된 선으로 표현한 몬드리안의 초기작에서는 단순한 선과 색만으로 절대미학을 구현하려 했던 철학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사물이나 풍경의 재현에 머물렀던 ‘그림’의 전복을 가져왔던 20세기 서구미술의 혁명인 ‘추상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작가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화폭에 구현하려 했는지를 드러내는 전시실이다.

‘절대’를 추구하되 초월이 아닌 현실에서 답을 구했던 표현주의 화가 블라맹크의 ‘샤투 근처의 마을’(1906년 작)

이 전시실이 ‘절대’나 ‘본질’을 추구하며 초월에 대해 고민한 거장들의 흔적이라면 ‘표현주의’라 명명된 2전시장에는 비록 추구하는 바는 같을지라도 시선은 ‘지상’이 아니라 ‘땅’에 두었던 거장들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힘찬 붓질과 강렬한 색채로 풍경을 그린 블라맹크, 구도와 색채 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야블렌스키, 격렬한 운동감을 담은 터치로 자연풍경을 화면에 담은 윌렘 드 쿠닝을 비롯해 장 뒤뷔페, 게오르그 바젤리츠, 마크 로스코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작품들을 만난다.

‘개념미술’이라 이름 붙여진 3, 4전시장에는 백남준의 설치작, 신디 셔먼, 토마스 스투루스,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사진과 국내 작가로는 김아타의 사진, 김영진의 영상작, 이불 서도호 등의 대표작이 망라되어 있다. 이 방 하나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다.

목, 금은 오후 8시 반까지 연장 개관하며 입장료도 20% 할인된다. www.deoksugung.com 참조. 02-2022-0600,0660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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