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수 형제… 집안은 같아도 생각은 달라요”

  • 입력 2005년 6월 1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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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와 역사에 대해 색깔이 뚜렷하게 엇갈리는 목소리를 내는 학자들 간에는 실제론 친형제(또는 사촌) 사이인 경우가 적지 않다. 두터운 우애와는 별개로, 형제들은 각자 옳다고 믿는 바를 거침없이 발언하며 서로에게 건전한 자극을 주고 있다.

장하성(52·경제학) 고려대 교수는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다. 장 교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한국경제가 투명성과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한국의 재벌중심 경제체제의 후진성을 비판해 왔다. 최근 한국은행 워싱턴사무소에서 열린 월례 오찬 세미나에서 그가 “한국경제가 개발경제시대 패러다임과 관치경제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재벌의 르네상스’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반면 사촌동생인 장하준(42·경제학)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현재 한국경제의 문제점은 국가-은행-재벌의 연계시스템에 기반한 과거 한국의 발전주의 전략을 포기한 데 있다고 비판한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의 경제 관료와 학자들이 군부독재와 발전주의 전략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해 선진국에나 적용 가능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함으로써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하성 교수는 한국경제의 문제를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보편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한 후발국의 추격 전략의 부재라는 특수성의 관점을 견지한다.

이처럼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점 차이는 친형제간인 유석춘(사회학·50) 연세대 교수와 유석진(정치학·47) 서강대 교수에서도 발견된다.

유석춘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은 유교적 보수주의에 기초한 국가의 역할이 컸다는 유교자본주의를 옹호하면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여전히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우파의 성공이 진보나 좌파적 토양이 자라날 수 있게 했다”며 전투적 글쓰기를 통해 한국 발전에 보수의 기여가 더 크다는 점을 역설해오고 있다.

반면 유석진 교수는 한국이 국가주도 개발주의 시대 논리를 벗어나 보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국가 개입의 축소와 국가보안법의 폐지 등을 주장한다. 특히 정보기술의 정치경제학을 연구한 그는 형인 유석춘 교수가 인터넷 정치시대의 무책임성과 선동성을 비판하는 데 비해 그 탈권위주의적 측면에 주목한다.

고(故) 한만년 일조각 사장의 아들인 한경구(49·인류학) 국민대 교수와 한홍구(46·역사학) 성공회대 교수의 시각에도 차이가 있다. 이들 형제 교수는 진보적 성향이 강하지만 동생이 진취적 진보주의자라면 형은 합리적 자유주의자의 성향을 보인다.

한홍구 교수는 6·25전쟁과 베트남전 등 한국근현대사의 그늘진 영역을 파헤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 시대에 대한 걸쭉한 비판을 가하며 전통적 역사 해석에 반기를 들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과 학생운동을 함께 한 그는 한국의 근대화에서 국가의 폭압적 행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반면 한경구 교수는 환경생태운동을 펼치지만 외무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던 경력이 말해주듯 국가의 역할을 어느 정도 긍정한다. 그는 또 “박정희의 민족주의와 그의 친일경력을 단죄하려는 민족주의는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한쪽이 청산 대상, 한쪽은 청산 주체로 갈라진 것은 아이러니”라고 지적할 만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에서 동생과 차이를 보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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