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열씨 ‘우리근대미술 뒷이야기’ 펴내

  • 입력 2005년 5월 26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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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서양화가 김관호(金觀鎬·1890∼1959)는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작품으로 ‘해질녘’이란 제목의 누드 그림을 제출했다.

한국 서양화 역사에서 첫 누드화인 이 그림은 졸업작품 중 1등을 차지했다. 유일한 한국인 졸업생이 수석을 차지한 것. 더 나아가 이 그림은 일본 문부과학성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당시 신문들도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당시의 유교적 도덕관 때문에 이 그림을 게재하는 용기를 낸 신문은 없었다. 당시 일간지 매일신보는 “벌거벗은 부인 둘이 뒤로 향한 모양”이라는 표현으로 그림을 설명했으며 후속 보도에선 “여인이 벌거벗은 그림인 고로 게재치 못함”이라는 양해문도 실었다.

한국 근대 미술사학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구열(李龜烈·73·사진) 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이 이처럼 근대라는 시공간에서 펼쳐진 미술이야기들을 발굴해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돌베개 간·1만6000원)라는 책으로 펴냈다. 일제강점기 미술계에서 벌어진 일들도 상세히 소개돼 있다.

민영환(閔泳煥·1861∼1905)이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반년 뒤 그의 거처에서 푸른 대나무 줄기 네 개가 솟아올랐다. ‘혈죽(血竹)’이라고 불린 이 대나무를 당시 명성이 높던 화가 양기훈과 안중식이 현장에서 그림으로 그려 구국투쟁을 촉구했다. ‘운동권 그림’의 원조격인 것.

최근 친일논쟁으로 수난을 겪고 있는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화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김 화백은 유명 인사와 귀족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각광을 받던 중 3·1운동을 목격하고 친구와 함께 당시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을 몰래 뿌리다가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그는 1937년 친일귀족 부인들이 전쟁 지원을 명분으로 ‘애국 금채회’를 만들고 금비녀 등을 헌납하는 장면을 기록한 ‘금채봉납도’를 그림으로써 친일파 화가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고 이 책은 전한다.

이 밖에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왕 이은 공이 어린 나이에 볼모로 잡혀간 일본에서 심사를 달래는 차원에서 미술 작품을 수집하다 컬렉터가 된 이야기, 이중섭이 담배 포장지에 그린 은지화가 뉴욕 근대미술관에 소장되게 된 과정의 비화 등도 소개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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