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음악 기행]빛나는 ‘오 솔레미오’…伊 나폴리

  • 입력 2005년 5월 12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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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전경. 파르테노페가 묻혔다고 전해지는 섬이 육지와 연결돼 있다. 멀리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은 나폴리 풍경의 구심점을 이룬다. 사진 정태남 씨
나폴리 전경. 파르테노페가 묻혔다고 전해지는 섬이 육지와 연결돼 있다. 멀리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은 나폴리 풍경의 구심점을 이룬다. 사진 정태남 씨
‘나폴리를 보아라, 그리고는 죽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던 나폴리. 그러나 지금의 나폴리는 아름다움과 추악함이 뒤범벅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요즘 나폴리를 찾는 관광객들은 안전을 위해 멀리서 나폴리 만(灣)의 풍경만 보고 지나쳐 버리든가, 아니면 시내에 들어오더라도 산타루치아 해변에 잠깐 내려 기념 촬영만 하고 가버린다.

이처럼 나폴리는 ‘무법천지의 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려 있다. 하지만 나폴리 땅을 밟는 사람 치고 나폴리의 노래를 한번쯤 흥얼거리지 않는 이가 있을까?

민중에서 탄생한 ‘나폴리의 노래(canzone napoletana)’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산타루치아’ ‘불 밝던 창’ ‘마르키아르’ ‘푸니쿨리 푸니쿨라’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무정한 마음’ ‘먼 산타루치아’ 등. 그러고 보면 나폴리만큼 세계적인 명곡을 많이 낳은 도시도 지구상에 없다.

‘나폴리의 노래’의 역사가 본격 시작되는 것은 19세기 중엽. 하지만 그 기원은 까마득한 신화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유혹하는 나폴리의 노래

산타루치아 성당과 나폴리 소녀들.‘산타루치아’라는 지역은 이 성당 이름에서 유래한다.

옛날 나폴리 앞바다에 기가 막히게 노래를 잘 부르는 파르테노페가 살고 있었는데 그 노래를 듣는 뱃사람은 누구나 넋을 잃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지중해를 방랑하며 모험을 하던 오디세우스는 그 노래를 직접 듣고 싶었다. 그냥 듣다가는 바다에 빠져 죽을 테니 그는 자기 몸을 돛대에 묶게 하고, 선원들은 밀랍으로 귀를 막도록 했다. 이윽고 오디세우스의 배가 지나가자 파르테노페는 유혹의 노래를 불렀으나 배는 탈 없이 멀리 사라져갔다. 자존심이 상한 파르테노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 한다.

이런 신화 때문에 나폴리는 ‘파르테노페의 도시’로도 불린다. 그리스어로 ‘처녀’라는 뜻인 ‘파르테노페’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로 ‘시레나’이고, 영어로는 ‘사이렌’이다. 파르테노페가 묻혔다는 섬에는 10세기경에 ‘계란 성’으로 불리는 요새가 세워졌다.

이 이름은 고대 로마의 문호 비르길리우스가 이 섬에 숨겨진 마법의 계란이 깨지는 날에 나폴리에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읊은 데서 유래한다. 이 섬은 육지와 30m 남짓 되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육지가 산타루치아 지역이다. 산타루치아 지역은 이곳에 있는 같은 이름의 작은 성당에서 유래한다.

산타루치아는 로마시대 기독교 박해가 심하던 4세기 초에 순교한 시칠리아의 처녀다. 산타루치아 지역의 해변 길은 ‘파르테노페의 거리’(Via Partenopea). 이 길에 세워진 품위 있는 고급 호텔들은 관광객들을 일년 내내 유혹하고 있다.

세계적인 명곡 ‘산타루치아’는 산타루치아 지역의 해변과 나폴리의 경치를 찬양하는 곡으로, 이 노래가 작곡된 19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산타루치아 지역은 서민들의 삶이 배어 있던 어항(漁港)이었다.

○ 밝은 햇살 넘치는 산타루치아 해변

나폴리는 파르테노페의 정기를 이어받은 듯, 벨칸토의 본고장이 되어 매혹적인 명곡과 명가수들을 많이 낳았다. 그런데 이제 그 신화는 끝난 것일까? 풍부한 서정성과 예술성을 담고 심금을 울리던 노래들이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으니. 요즘 나폴리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노래들이 있지만 품위와 서정이 빠진 경박한 음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이 나폴리에 진주하면서 강렬한 리듬을 바탕으로 하는 팝 음악이 몰려 들어와 섬세한 선율을 담은 나폴리 노래가 밀려버리고 만 것이다. 만약 지금 오디세우스가 나폴리 앞 바다를 다시 지난다면 몸을 굳이 돛대에 묶을 필요가 있을까?

산타루치아 해변을 걸으면서 환상에 한번 젖어 본다. 파르테노페가 묻혔다는 작은 섬은 나폴리의 수호신처럼 솟아 있는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나폴리 앞바다에는 배들이 지중해 햇살을 받으며 유유히 지나간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산타루치아’가 감미롭게 들려온다.

그러다가 ‘사이렌’ 소리에 환상이 깨져버렸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을 토하면서 경찰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귀를 막아야 한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건축-미술… ‘예술의 고향’▼

고도(古都) 나폴리는 속을 들여다보면 건축 미술 음악 연극 등 여러 부문에 걸쳐 보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나폴리는 한때 로마 베네치아 밀라노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악의 중심지였다. 페르골레시, 스카를라티, 욤멜리, 치마로사, 파이시엘로,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칠레아 등 유명 음악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헨델은 젊은 시절 나폴리 음악의 매혹적인 선율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고, 파가니니는 이곳에 머물면서 바이올린 협주곡 2번과 3번을 작곡했다. 나폴리의 산 카를로 오페라 극장은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보다 40년이나 먼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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