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弓匠 11대째 이어온 권무석씨의 ‘각궁예찬’

  • 입력 2005년 4월 7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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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째 가업으로 각궁을 만들어온 권무석씨가 힘차게 시위를 당기고 있다. 각궁은 우리 민족의 기개를 드러내는 상징이자 이민족들이 탐내온 ‘명품’이다. 강병기 기자
11대째 가업으로 각궁을 만들어온 권무석씨가 힘차게 시위를 당기고 있다. 각궁은 우리 민족의 기개를 드러내는 상징이자 이민족들이 탐내온 ‘명품’이다. 강병기 기자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말에 올라탄 5명의 인물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화살은 이들이 쫓고 있는 사슴과 호랑이의 심장을 단숨에 뚫을 기세다.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현에 있는 무용총 수렵도(5세기 말∼6세기 초). 이 벽화에는 동북아시아에서 위세를 떨쳤던 고구려인의 힘찬 기상이 엿보인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상암정. 화살이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한 발, 두 발…. 궁사들의 몸은 어느새 활, 과녁과 하나가 됐다. 사대 뒤편에서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제23호 궁장(弓匠) 기능 보유자 권무석(66) 씨. 그는 물소 뿔을 재료로 사용하는, 전통 활 각궁(角弓)을 만든다. 그에게 궁장은 조선 숙종 때부터 11대째 이어져온 가업(家業)이다.

○ 우리 민족의 ‘명품’ 각궁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권무석 씨.

상암정 한쪽에 마련된 그의 작업장은 마무리 작업으로 분주했다. 해궁(解弓) 과정이다. C자형의 ‘부린활’(시위를 벗긴 활)에 시위를 걸어 마지막 모양을 잡는 단계다. 장인의 솜씨에 따라 활의 강도와 성능이 달라진다.

우리 민족에게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생계를 이어주는 사냥 도구인 동시에 이 땅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조선의 활과 중국의 창, 일본의 조총을 각각 최고의 무기라고 했다.

“조총의 사거리가 50m 안팎인 반면 활은 300∼400m였습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힘없이 떨어지는 총알과 달리 화살은 수백 보를 날아간 뒤에도 가속도가 붙어 과녁을 꿰뚫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요구한 공물 품목에는 각궁이 들어 있을 정도로 우리 활은 예로부터 명품이었습니다.” 권 궁장의 말이다.

○ 1000번의 손길이 있어야

각궁은 길이 120∼130cm의 단궁(短弓)이자 여러 재료를 사용하는 복합궁이다. 물소 뿔, 소 힘줄, 대나무, 뽕나무, 참나무, 화피(벚나무 껍질), 민어부레풀 등 7가지 재료가 사용된다.

각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땀과 시간과의 싸움이다. 1cm가 채 되지 않는 대나무에 겉쪽에는 물소 뿔, 안쪽에는 소 힘줄, 끝부분에는 뽕나무, 손잡이에는 참나무 등 각기 다른 재료를 붙인다.

본격적인 작업은 3개월이 걸리지만 재료의 준비와 가공에 한 해가 꼬박 걸린다. 접착제는 어교(魚膠)라는 민어부레풀을 사용하는데 각 재료를 붙일 때마다 수십, 수백 회의 손 작업을 거치게 된다.

권 궁장은 “활 하나에 1000번, 화살 하나에 100번의 손길이 필요하다”며 “빠른 것 좋아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보면 각궁 제작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 “우리 집 활은 내 대에서 끝났다”

그가 처음부터 궁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활로 유명한 경북 예천에서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활 만들기를 거들었지만 일이 달갑지 않았다고 했다. 궁장은 17년 터울의 큰형(권영호 씨·작고) 몫이었다.

“정말 활은 내 것이 아니다 생각했죠. 하물며 내 인생도 내 것이 아니었는데…. 살다가 힘들어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고, 활과는 담 쌓은 채 살아갔죠.”

1970년대 후반 추석 때의 일이다.

큰형이 제사상을 물린 뒤 “우리 집 활은 내 대에서 끝났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두 조카의 꿈은 활과는 상관없는 다른 것이었다. 결국 서울로 형님을 모신 뒤 활 공부를 3년간 다시 했다. 그의 나이 마흔이 다 된 때였다.

“지금 자다 깨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지만 핏줄 속에 있는 뭔가가 사람을 활로 끌고 간 것 같습니다.”

○ “요즘도 할머니 곁에 가십니까”

부린활을 다루던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기자에게 “꼭 활을 배우라”고 했다. 1980년대 초반 활 쏘는 법도 함께 배웠는데 가장 궁금한 것이 국궁이 정력에 좋다는 말이었다. 국궁하는 사람치고 배 나온 사람이 없고, 70대 이상의 정정한 명궁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 든 분들을 찾아다니며 ‘요즘도 할머니 곁에 가시냐’고 물었죠. 그러면 10명 중 9명의 대답이 ‘그렇다’였어요. 나중에 스포츠 과학을 연구해 보니 알겠어요. 국궁은 보기에는 정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동적인 운동입니다.”

옆에 있던 이환철(56·국궁 공인 9단) 씨가 거들었다. 이 씨는 “국궁은 시위를 당기면서 전신을 사용하고, 시위를 놓으면 진동으로 전신 마사지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가업에 대한 권 궁장의 생각은 어떨까.

“아들이 하나 있어요. 음악인가 랩인가를 한다더니 군대에 갔죠. 사실 다 계산이 있어서 공부 열심히 안 해도 뭐라고 하지 않았어요.(웃음)”

아들 얘기를 하면서 그는 자신이 만든 활의 시위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가 숙명처럼 맞았고, 또 자식에게 쏘는 운명적인 화살이다. 강요는 아니지만 간절한 바람이 담긴.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국궁 기초훈련 2∼3개월 필요 초보자용 장비는 40만원 수준▼

초보자가 국궁을 배우려면 가까운 활터를 찾는 게 좋다.

서울에는 종로구 사직동 황학정 등 9개, 전국적으로는 300여 개의 활터가 있다. 동호인은 약 2만 명이다. 초보자의 경우 2∼3개월의 기초 과정을 통해 기본자세와 요령을 배워야 한다. 활터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입회금(10만 원)과 월 회비(2만∼3만 원)를 내면 사범으로부터 활쏘기를 배울 수 있다.

장비는 각궁의 경우 활(65만 원)과 죽시 10대, 손에 끼는 각지를 합해 100만 원, 초보자용 카본궁은 전체 비용이 35만∼40만 원 수준이다. 각궁은 초보자의 경우 다루기가 힘들고 파손 위험도 있기 때문에 기량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뒤 사용해야 한다. 활터와 장비에 관한 기본 정보는 ‘대한궁도협회’ 홈페이지(kungdo.sports.or.kr)를 참조하면 된다.

활과 화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주는 박물관도 있다.

2001년 문을 연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영집궁시박물관’(www.arrow.or.kr)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弓矢匠) 기능 보유자인 영집 유영기 씨가 세운 곳이다. 유 씨가 직접 만든 화살을 비롯해 전통 활, 세계 각국의 활과 화살이 전시돼 있다. 각궁 제작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031-944-6800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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