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김지운 감독 “영화는 달고 인생은 쓰다”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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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훈 기자
권주훈 기자
행동하는 것과 똑같이 생겼고, 생긴 것과 똑같이 영화를 만드는 이가 바로 김지운(41) 감독이다. 배우 뺨치는 외모(그는 연극배우였다)를 가진 그의 취미는 ‘에스프레소 커피 딱 한 잔 시켜 놓고 3시간 동안 수다 떨기’.

이병헌 주연의 액션 누아르 ‘달콤한 인생’(4월 1일 개봉)을 연출한 김 감독이 지금 관객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장화, 홍련’을 통해 ‘탐미적 호러’의 새 지평을 연 그가 이번엔 ‘미학적 누아르’를 들고 나타났다. 성공할까. 22일 만난 그는 “쿨하고 멋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쿨하고 멋있게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등급이 ‘18세 이상’으로 나왔다.

“어렸을 때 스티브 매퀸과 알랭 들롱의 액션 영화에서 받은 영향이 이 영화를 만들게 했다. 근데 정작 애들은 못 보게 됐다. 이럴 바엔 더 ‘센’ 장면들을 집어넣는 건데…. 배를 가르는 장면도 있었는데, 주위에서 말려 그만뒀다. 그거 찍었으면 아마 ‘25세 이상 관람 가’가 나왔겠지?”

―감정이 아주 절제돼 있다.

“신파로 흐르는 요소들을 차단했다. 느닷없이 ‘센’ 장면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관객의) 감정 변화를 가져가려 했다. 달콤했던 인생이 단 한 발의 총알로 급격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 한마디로 ‘꿈 깨라. 인생은 사실 이런 거야’ 하고 말하는 거지.”

―‘총’이란 소재가 생경한데….

“홍콩 누아르에선 총기가 홍수를 이루지만 실제 홍콩에선 총기가 범람하지도, 범죄율이 높지도 않다. 총은 현실을 좀 더 극대화하기 위한 영화적 수사다. 총이 갖는 판타지를 통해 인생과 현실을 들여다보자는 거지. 삶은 진짜 고통스럽다는 사실 말이다.”

―긴장이 극에 이른 순간 갑자기 유머가 터진다.

“내가 그렇게 생겨 먹어서, 만든 것도 그랬나 보다. 유머는 어느 순간 긴장을 확 이완시키면서 사태를 뚝 떨어져 바라보게 만든다. 그 거리감에서 삶의 우스꽝스러운 단면들이 나온다. 사실 이게 진짜 우리 아닐까. 이게 나의 유희정신이다.”

―너무 예쁜 여자한텐 남자가 안 붙는 법이다. 이 영화가 그렇지 않을까.

“난 나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 ‘반칙왕’을 만들었을 때도 사람들이 그랬다. 은행원 임대호(송강호)가 직장 상사를 멋지게 백드롭시켰으면 50만 명은 더 들었을 거라고. 그런 말은 내게 무의미하다. 난 사람들이 내 영화의 어떤 순간이나 이미지에 중독되기를 원한다.”

―신민아 캐스팅이 의외다. ‘장화, 홍련’의 임수정 문근영도 그랬지만, 감독 취향은 ‘소녀와 여성 사이’인 것 같다.

“희수(신민아)는 누아르에 전형적인 ‘요부형 팜 파탈’이 아니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여자면서도 왠지 존재만으로도 남자의 운명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여자다. 신민아는 매력적이고 세련되고 이국적인 요소가 있다. 성숙해 가는 여자가 갖는 성적 긴장감이랄까.”

―비주얼 전략은….

“빛의 콘트라스트(대조)가 중요했다. 그 안에서 삶의 콘트라스트가 생기니까. 초반엔 선우(이병헌)의 내면처럼 주변이 모노톤의 황량한 느낌이다. 점차 감정이 격렬해지면서 색깔과 빛도 강렬해진다. 액션 신도 쿨하고 매끈하다가 폭력적으로 변한다. 암부(暗部) 촬영에 있어선 한국 최고 수준의 ‘때깔’이라고 자평하고 싶다. 검은색이 빛나는 걸 보았는가.”

―감독의 가장 ‘달콤한 인생’은 어느 때였나.

“백수였을 때다. 그땐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음악 한 곡을 들어도 행복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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