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케이블 터줏대감 3인의 10년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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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의 터줏대감들.’ 1995년 3월 본 방송을 시작한 케이블TV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진행자들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MBN 앵커 겸 기자 박종진, 아리랑TV 앵커 안착히, m.net 이기상 씨는 10년 동안 시청자와 함께 했다. 박 씨는 앵커와 기자를 10년간 병행했고, 안 씨는 YTN에서 국내 최초의 영어 뉴스인 ‘Korea Report’를 진행하다 아리랑TV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줄곧 영어뉴스에만 전념했다. 이 씨는 국내 VJ 1호로 각종 가요와 오락 프로그램을 도맡아 왔다. 8일 이들이 만나 10주년 소감과 그간의 에피소드들을 나눴다.》

● 덜 갖춰져 기회도 많았던 초창기

▽박종진=방송 경험이 전혀 없던 입사 직후, 선배가 “야, 너 방송 한번 진행해봐”라고 해 얼떨결에 마이크 앞에 앉았지요. 당시 기자가 5명밖에 없어서 그랬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안착히=YTN에서 한국 최초의 영어방송을 진행하게 돼 뿌듯하면서도 ‘저처럼 젊은 여자가 한국을 잘 알릴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죠. 처음엔 앵커만 하려고 했는데 선배가 ‘자리에만 앉아 있으면 오래 못 간다’고 해서 취재도 배웠어요.

▽이기상=초창기에 ‘젊음이 있는 곳에’라는 프로그램에서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가는 코너가 있었는데 1주일치를 하루에 다 찍느라 어떤 곳은 새벽에 갔어요. 새벽에 젊은이를 찾느라고 헤맨 걸 생각하면….

● “수위 빼곤 뭐든 다해봐요”

▽박=2001년 청와대에 출입할 때 오전 6∼8시에 방송하는 ‘뉴스 파노라마’ 앵커를 같이 맡고 있었죠. 오전 5시에 출근해 뉴스를 마치고 청와대로 갔죠. 당시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이 저보고 ‘독하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안=저도 오후 10시 뉴스를 진행하는데 제가 맡은 기사는 취재 편집 녹음을 제가 다해요. 대통령 기자회견이 있으면 청와대도 들어가고요. 우리 방송은 뭐든지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해요.

▽이=맞아요. 저도 VJ만 하는 게 아니라 카메라도 다루고 편집도 하죠. 초창기 케이블TV의 제작여건이 열악해 ‘수위 빼곤 뭐든 다해본다’는 농담도 있었어요. 그때는 피곤했는데 이젠 그게 장점이 돼요. 앞으론 방송 제작도 분업보단 한 사람이 통합해 일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 “그 앵커 요즘 왜 안보여요?”

▽박=얼마 전 카메라 기자 한 사람이 경기 부천시의 한 국밥집을 취재하러 갔는데 주인 아줌마가 “박종진 왜 안나오느냐”고 하더래요. 당시 제가 오전 10시 뉴스 앵커를 맡아 노무현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며칠간 안보이니 혹시 그것 때문에 잘린 것 아니냐고 걱정하더래요. 프로그램 개편으로 제가 다른 프로그램을 맡아 오해가 생겼던 거죠.

▽안=아리랑TV가 외국에선 위성방송이잖아요. 지난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보도했는데 한 중국 대학생이 “우리 정부가 그런 걸 하고 있는 줄 몰랐다. 고구려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며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어요.

▽이=몇몇 분야에선 케이블TV 프로그램이 지상파TV 프로그램보다 경쟁력이 높아요.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 대표적이고 제가 하는 연예뉴스 프로그램도 매일 방송한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호응이 적지 않아요.

● “후배 중에 빨리 케이블 스타 나오길”

▽박=제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 얘기를 앵무새처럼 전하는 게 아니라 제가 취재 편집 제작을 모두 주도적으로 하는 프로그램 말입니다.

▽이=저도 마찬가진데요, 노하우는 있으니 재정적 지원만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한국에 온 모든 외국사람들이 아리랑TV 뉴스를 보면 한국 소식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어요.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희망도 있다. 그건 ‘후배 중에 빨리 케이블TV의 스타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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