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우 기자칼럼]지율스님의 단식

  • 입력 2005년 2월 1일 15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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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이 걱정스럽다. 1일로 스님의 단식은 무려 98일째를 맞고 있다. 그동안 물과 소금 그리고 차만을 마시며 단식을 계속해온 스님은 현재 기력을 완전히 소진해 오직 정신력으로만 버티고 있다는 전언이다. 불교계에선 수도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평소에도 소금과 차만으로 한두달을 견디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100일에 가까운 단식은 이제 한계점에 도달해 있는 듯 하다.

스님이 목숨까지 걸고서 지키려는 것은 다름 아닌 경부고속철도 2단계 공사구간에 있는 천성산이다. 이 산은 1998년 국가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무제치늪과 2002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양산 화엄늪 등 고산습지 27개를 가지고 있는 생태환경의 보고로 터널을 뚫는 경우 생태계 파괴가 뻔하다는 게 스님을 포함한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이 공사를 두고 환경론자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2002년 12월 초 당시 민주당 노무현대통령후보는 노선재검토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대통령 취임이후인 2003년 5월에는 노선재검토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러나 그해 9월 국무총리 주재로 정책조정회의를 열어 그동안의 재검토 결과를 토대로 하여 기존 노선대로 건설하기로 결정했고 그해 12월 천성산 구간의 공사가 착공됐다.

이에 앞서 환경단체와 불교계는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인 울산지법(2004년 4월)과 항고심인 부산고법(2004년 11월)에서 각각 각하 및 기각 결정이 났다. 특히 항고심 판결에는 환경부가 지난해 9월부터 한달여 동안 한국환경정책연구원의 지질 및 지하수 전문가, 습지 전문가들과 현지 정밀조사를 벌인뒤 ‘천성산 터널이 습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요지로 내놓은 조사 보고서가 주요 판단자료가 됐다.

환경론자가 개인이나 단체의 힘으로 무리한 개발을 중단시킨 예는 많다. 1997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서 유서깊은 삼나무 숲의 벌목을 막기 위해 20대 여성인 줄리아 힐(26)이 600년 된 고목의 54미터 높이에서 천막을 치고 2년 동안 ‘나무 위 농성’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그는 결국 벌목회사의 항복을 받아냈고 숲은 보존됐다. 국내에서는 2001년 5월 경기 용인시 대지산 살리기 운동이 성공해 정부의 녹지지역 지정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 경우들은 환경을 지키는 대신 사회가 지불해야할 대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들이었다. 따라서 숲을 지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가 비교적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키려는 가치에 비해 사회 전체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면 사회 구성원들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발과 환경보전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즉 코스트(비용)의 법칙이다. 환경은 가급적 보전해야 하지만 그 보전으로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코스트가 지나치게 큰 경우에는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율스님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는데도 여론의 호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바로 비용의 법칙 때문이 아닐까.

한국철도시설공단측은 2010년 완공 예정인 대구-부산간 2단계 구간 공사가 노선 수정으로 상당기간 연장될 경우 1년에 2조원의 사회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공사구간을 다시 원상태로 복원해야 하는 비용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 법원이 소송을 기각한 것은 이같은 사회적 비용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목숨을 걸고 환경을 지키려는 지율스님의 대의와 헌신은 감동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민 전체의 이해와 관련된 문제로 정부 입장에서도 사회구성원의 대체적인 생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율스님의 ‘아름다운 대의’는 이미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됐고 ‘무분별한 개발론자’ 들에게는 엄정한 경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율스님께 이제 단식을 풀고 스님에 대한 국민의 걱정을 덜어 주시라고 건의하고 싶다.

정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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