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려짓는 광화문'

  • 입력 2005년 1월 31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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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당시 광화문 모습
1926년 당시 광화문 모습
문화재청의 광화문 현판 교체 추진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일제강점기 광화문이 헐릴 때 조선 민중의 감정을 이입해 그 설움을 대변한 동아일보의 '헐려짓는 광화문'이라는 기사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본보 1926년 8월 11일자에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이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총독부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라는 운문체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기사는 통치권자 마음대로 요리되는 광화문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당시 본보 사회부장이던 설의식(薛義植·1900~1954) 선생이 쓴 이 기사는 희로애락을 알 리 없고 말도 없는 광화문을 대신해 '오랜 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라며 망국의 한을 표현했다. 설 선생은 베를린 올핌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손기정 선수 유니폼의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했던 본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퇴사했다가 훗날 편집국장과 부사장을 역임했다.

'석공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알음이 없으리라마는 뚜다닥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 아파하며 역군의 둔장이 네 허리를 들출 때에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 질려할 것을 네가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당시 광화문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근정전 앞에 지어지면서 완전히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가 반대 여론이 거세게 일자 경복궁의 동북쪽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자리로 옮겨지었다. 기사는 조선의 정궁 경복궁을 지키던 광화문이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타박하는 형식이지만 그 대상은 분명 광화문이 아니다.

'몇 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며, 수구당도 드나들고 개화당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日露)의 사절도 지나고 청국(淸國)의 국빈도 지나던 광화문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천직이며 그 길을 인도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천명이었다 하면 너는 그 자리 그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역사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보던 광화문이 엉뚱한 위치로 옮겨지는 것을 한탄하는 이 구절은 광화문의 제 모습을 찾아주기보다는 권력의 향배에 따라 현판 바꾸는 일에 몰두하는 요즘 세태를 나무라는 듯하다.

광화문은 광복 후에도 계속 경복궁 동북쪽에 서 있다가 6·25전쟁 때 포탄에 맞아 문루가 불타 없어졌고 1968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달았다. 그러나 그 앞의 도로 때문에 원래 위치에서 14.5m 북쪽에 목조가 아닌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복원됐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동아일보 1926년 8월 11일자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이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총독부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은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의식(意識) 없는 물건이요. 말없는 건물이라 헐고 부수고 끌고 옮기고 하되, 반항도 회피도 기뻐도 설워도 아니한다. 다만 조선의 하늘과 조선의 땅을 같이한 조선의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아까워하고 못 잊어 할 뿐이다. 오랜 동안 풍우를 같이 겪은 조선의 자손들이 그를 위하여 울어도 보고 설워도 할 뿐이다.

석공의 망치가 네 가슴을 두드릴 때 너는 알음이 없으리라마는 뚜다닥 소리를 듣는 사람이 가슴 아파하며 역군의 둔장이 네 허리를 들출 때에 너는 괴로움이 없으리라마는 우지끈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허리질려할 것을 네가 과연 아느냐 모르느냐?

팔도 강산의 석재와 목재 인재의 정수(精粹)를 뽑아 지은 광화문아! 돌덩이 한 개 옮기기에 억만 방울의 피가 흐르고 기왓장 한 개 덮기에 억만 줄기의 눈물이 흘렀던 광화문아! 청태(靑苔) 끼인 돌 틈에 이 흔적이 남아 있고 풍우 맞은 기둥에 그 자취가 어렸다 하면, 너는 옛 모양 그대로 있어야 네 생명이 있으며 너는 그 신세 그대로 무너져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풍우 몇 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며, 수구당도 드나들고 개화당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日露)의 사절도 지나고 청국(淸國)의 국빈도 지나던 광화문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천직이며 그 길을 인도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천명이었다 하면 너는 그 자리 그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총독부에서 헐기는 헐되 총독부에서 다시 지어놓는다 한다. 그러나 다시 짓는 그 사람은 상투 짠 옛날 그 사람이 아니며 다시 짓는 그 솜씨는 웅건한 옛날의 그 솜씨가 아니다. 하물며 이때 이 사람의 감정과 기분과 이상아야 말하여 무엇하랴? 다시 옮기는 그곳은 북악을 등진 옛날의 그곳이 아니며 다시 옮기는 그 방향은 경복궁을 정면으로 한 옛날 그 방향이 아니다.

서로 보지도 못한 지가 벌써 수년이나 된 경복궁 옛 대궐에는 장림(長霖)에 남은 궂은 비가 오락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하는 망치 소리는 장안을 거쳐 북악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달파하는 백의인의 가슴에 부딪친다.

▼설의식(薛義植)▼

(1900~1954) 언론인.

아호 小梧. 함남 단천 출생. 일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편집국장. 부사장. 새한민보 창간.

저서 : 수필집 『解放以前』 『花桐時代』 『小梧文章選』

역서 『亂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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