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가상좌담]김구-이완용-박정희가 만났다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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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거일)=올해가 을사늑약 체결 100년이면서 광복 60주년이고 한일협정 체결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중요한 시기들에 두드러진 역할을 한 세 분 지도자들을 모셨습니다. 먼저 이완용 선생께 여쭙겠습니다. 을사늑약의 역사적 뜻은 무엇입니까?

▽이완용=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이양한다는 겁니다. 그 조약으로 조선은 완전한 독립국가의 지위를 잃었고, 외교라는 채널을 통해 다른 나라들의 도움을 받을 길도 잃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조약은 국제 관계에서의 실상을 반영해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이기면서, 조선의 운명은 결정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일본이 조선에 대해 지닌 특별한 지위를 인정했던 겁니다. 을사늑약은 그런 현실을 반영한 셈이죠.

▽김구=그러나 당시 대신(大臣)들이 일본의 위협에 더 저항했다면, 역사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완용=당시 일들을 변명하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그래도 당시 우리 대신들은 나름으로 애썼죠. 이토(伊藤) 후작이 황제 폐하께 뵙기를 요청했지만 폐하께선 거절하시고 대신들과 상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토 후작과 일본 군대에 모진 핍박을 받았어요. 우리는 방에 갇혀 여러 날을 버텼지만, 외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외국 공관도 우리에게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구차한 변명으로 받아들이시겠지만, 우리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일본의 압력에 저항했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긴 뒤엔 조선이 독립국가로 남을 길이 없었어요. 만일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겁니다.

▽박정희=러시아가 이겼다면,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조선이 독립을 지킬 길은 없었습니까?

▽이완용=사실 조선은 독립을 유지하기 좋은 처지에 있었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비록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나라였어요. 세 나라 가운데 어느 하나가 강해지면, 다른 두 나라들이 연합해서 강자를 견제하게 마련이지요. 게다가 조선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이 현상유지 정책을 폈으므로, 상황은 더욱 안정적이었죠. 어려운 시절, 임시정부를 이끄신 김구 선생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김구=그런 점에서 8·15광복은 우리 조선의 왜곡된 역사가 바로 펴나갈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광복은 우리 손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에 이긴 데서 나온 부차적 효과였어요. 그래서 우리 조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정이 결국 남북분단과 6·25전쟁으로 이어졌지요. 태평양전쟁이 끝났을 때, 미-소 냉전구도는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나누어 점령한 조선반도에 단일국가가 세워지기는 애초에 어려웠다고 할 수 있지요.

▽박정희=아니, 뜻밖입니다. 그러면 선생께선 남한에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이승만 대통령의 입장을 뒤늦게 지지하시는 셈입니까?

▽김구=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웃음) 사실, 나는 조선 사람들이 영구적 분단을 막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이승만의 주장에 부정적이었죠. 그러나 이 자리를 빌려, 솔직히 그 뒤의 역사는 그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박정희=그렇다면, 선생께선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구=식민지를 막 벗어난 사회는 불모지입니다. 그 위에 나라를 세운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사회기구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모든 인적 물적 자원들은 크게 부족하고…그런 상황에서 그는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셈이지요.

▽박정희=정적(政敵)에 대해 그렇게 너그러운 평가를 하시다니, 역시 시간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군요.

▽김구=박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을 발전의 길로 이끄시는 데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그 길에서 처음 세워진 중요한 이정표가 한일협정이었죠. 박 대통령 스스로는 한일협정의 역사적 뜻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정희=일본은 유럽 문명권 밖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서양의 우월한 지식이 동아시아로 들어오는 도관(導管) 노릇을 했어요. 실은 지금도 일본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아직도 크다는 사실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나죠.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자본주의 체제를 지녔고 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세력과 맞서는 우리에게 유일한 우방입니다. 일본과의 협력적 관계를 전제로 삼지 않고선,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안보와 경제에서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정책을 세울 수 없어요.

▽이완용=당시 반대가 거셌지요?

▽박정희=저는 중요한 것은 협정의 내용이 아니라 협정 자체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내용도 불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김구=원수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도 잘사는 거예요. 일본의 보상이 종자 자본이 되어 경제를 발전시킨 일을 생각하면, 난 가슴이 따스해집니다.

▽이완용=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제게 변명할 기회를 주신다면, 나라가 망하는 판국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은 가장 덜 나쁘게 망하는 길을 찾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 점을 잊으면, 당시 역사를 제대로 살피기 어렵고, 불행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도 힘들겠죠.

▽김구=역사의 흐름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어떤 목표를 단숨에 이루려고 서두르는 것은 위험해요. 여건이 익을 때까지,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통일에 대해 이 점을 유념해야죠.

▽박정희=민족주의 이념도 진화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열린 민족주의를 추구해 일본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국제적 입지를 넓혀야 해요.

●복거일(卜鉅一·60)씨

△서울대 상대 졸업(1967)

△대체역사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데뷔(1987)

△가상역사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펴냄(1991)

△사회비평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21세기의 친일 문제’ 펴냄(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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