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개콘-웃찾사… ‘코미디프로 전성시대’ 엿보기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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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전성시대가 다시 온 걸까.

KBS 2TV의 ‘개그콘서트(개콘)’와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이 인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때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코미디 프로그램을 평정했던 개콘에 웃찾사가 도전장을 던졌다.

이달 들어 웃찾사의 시청률이 20% 선으로 올라서자 두 프로그램의 경쟁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20일 발표된 지난주 주간 시청률 순위(TNS미디어코리아 기준)에서 개그콘서트는 전국 시청률 24.4%, 웃찾사는 21.7%로 각각 2, 4위를 차지했다.

일일 드라마를 빼놓고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프로그램이다.

우울한 시대일수록 코미디에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두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는 뭘까. 꼼꼼히 시청하면서 웃음 코드를 들여다봤다.》

○ 웃음과 코미디

시청에 앞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이라는 책을 펴들었다. 미리 공부를 하면 좀 나을까 싶어서다. 1900년에 출간됐는데 ‘희극성의 의미에 관한 시론’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아기의 웃음처럼 자연적으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희극(코미디)을 통해 만들어지는 웃음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에 나와 있는 코미디 분석서는 대부분 이 책의 내용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베르그송은 희극성은 ‘자동주의와 경직성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삶이나 사회는 우리에게 현재 상황의 우여곡절을 분간해 내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요구한다. 구성원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 남들에게 웃음을 준다는 것이다.

책에는 여러 가지 예가 나와 있는데 ‘주의(注意)가 영혼에서 신체로 갑자기 돌려지면 웃음이 터진다’는 식이다. 심각한 상황에서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 연설가, 엄숙한 장례식에서 ‘그는 고결하고 무척 뚱뚱했다’는 추도사 따위가 이런 유다.

베르그송은 또 웃음이 일탈에 대한 사회적 징벌이라고 썼다. 희극적 웃음은 항상 짜고 씁쓸한 소금기가 남는 해안가 파도의 거품과 같다.

개콘과 웃찾사에는 사회적 징벌을 받을 만한 어떤 뻣뻣함이, 일탈이 숨어있을까.

○ 16일 밤 웃찾사

‘절대로 웃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고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비판적으로 읽기 위해서. 억지로 웃기려는 시도를 철저하게 가려내려고 했다.

‘그때그때 달라요’에서 백기를 들고 말았다. ‘미친소’라는 영어강사와 조교가 나와 영어 문장을 희한하게 해석하는 코너다. 덩치 좋은 남자 강사가 단발머리에 꽃을 꽂고 나온 것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졌다. 여자였으면 안 웃었다.

‘Can I have a smoke?’라는 문장은 ‘담배 피워도 될까요?’가 아니라 ‘가수 켄의 아이에게 해부할 거냐고 묻자 수목요일에(smoke) 하겠다고 대답했다’로 해석된다. 이 코너에는 ‘△△접속사’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 ‘a(어)’는 이 문장에서 ‘긍정접속사’.

미친소(정찬우)는 “저의 해석에 대해 절대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걸 여러분은 명심해야 하는 거죠”라면서 “잉글리시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영어 만능 시대, ‘내 멋대로 해석법’이 통쾌하다.

‘비둘기합창단’에 나오는 ‘이태리 느끼한 혈통 마가린 버러 3세 리마리오’는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목소리와 눈웃음으로 여성 관객들에게 비명에 가까운 환성을 이끌어낸다.

“오늘은 누구에게 나의 영혼을 선물할까. 오우 오우 베이비. 본능에 충실해. 으음” 하는 식으로 진짜 ‘작업’과 분간이 안 되는 대사. 여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코믹 댄스에 객석은 웃음의 도가니.

○ 19일 밤 개콘

개콘은 1년 만에 봤다. 이해를 못 할까봐 걱정스러웠다.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은 처음 보면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웃음도 학습된다.

‘깜빡홈쇼핑’ 쇼핑 호스트로 나오는 김깜빡(김진철)이 전화기 뒷면의 생산국 표시에 나오는 ‘Made’를 ‘마대’라고 읽어서 “‘마대 인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로 수출하는 마대 전자거군요”라고 하자 안어벙(안상태)은 “인도에서 네시 정각에 만들었어”라고 대꾸한다.

이 코너는 영어만능주의에 대해 웃찾사의 ‘그때그때’와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홈쇼핑 열풍이라는 시대상을 담고 있다.

바보들도 여전히 등장했다. 영화 ‘집으로’를 패러디한 ‘집으로’ 코너가 대표적.

‘인간은 왜 웃느냐’에 대한 철학자들의 대답 가운데 가장 많은 게 우월성 이론이다. 타인의 실수나 결점을 발견했을 때, 혹은 뭔가 모자라는 행동을 볼 때 웃게 된다는 것이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웃음의 감정은 타인의 약점을 자신의 약점과 비교해 우월감을 느꼈을 때 나타나는 갑작스러운 승리감’이라고 지적했다. 코미디에선 영원히 바보가 빠질 수 없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웃음을 요구하면 실패한다. ‘개그의 신’ 코너에선 “뭐든지 해서라도 웃기기만 하면 된다”고 대놓고 얘기하고 ‘이글파이브’에선 “웃을 때도 됐는데 안 웃으면 바보”라는 노래를 부른다. 허나 웃음이 안 나오는데 어쩌란 말이냐.

○ 2000년대의 코미디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손병우 교수는 ‘풍자바깥의 즐거움-텔리비전 코미디’에서 코미디를 정치 상황과 연결시킨다. 그에 따르면 △70년대-눌변과 말장난 △80년대-눌변의 완성 △80년대 말∼90년대 초-달변과 재담 △2000년대-눌변과 달변 등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억압이 심한 사회일수록 눌변이, 표현의 자유가 풍부한 사회일수록 달변의 코미디가 인기를 끄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은 툭 치면 넘어지는 식의 슬랩스틱과 말장난, 눌변과 달변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갈수록 복잡해져가는 세상사를 반영하고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팬들의 힘도 세졌다. 개콘과 웃찾사는 모두 공개방송 형태의 코미디 프로그램. 현장에서 팬들의 반응이 바로 측정되고 다음 제작에 반영된다. 방송이 나간 다음날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수백 건의 글이 올라온다. 오늘 누구의 연기가 좋았다거나 어떤 상황은 이해가 안 됐다거나 하는 식의 구체적인 조언이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웃음은 ‘횡격막의 짧은 단속적(斷續的)인 경련적 수축을 수반하는 깊은 흡기(吸氣)로부터 생긴다’고 되어 있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적어놓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게 웃음을 이끌어내는 장치다. 곧이곧대로 밀어붙이는 이 경직성! 그것이 바로 웃음의 원천이 아닐까.


시대에 따라 코미디의 내용과 형식도, 대표 코미디언도 바뀌었다. 왼쪽부터 배삼룡 이주일 이창훈 심현섭. -동아일보 자료사진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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