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퍼펙트 마일’… “한계는 없다” 아름다운 달리기

  • 입력 2004년 12월 17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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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배니스터가 1950년 출전한 1마일 경주에서 결승선을 지나고 있다.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로저 배니스터가 1950년 출전한 1마일 경주에서 결승선을 지나고 있다.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퍼펙트 마일/닐 배스컴 지음 박아람 옮김/447쪽·1만3800원·생각의 나무

미국의 웨스 산티(72), 호주의 존 랜디(74), 영국의 로저 배니스터(75) 등 세 사람은 젊은 시절인 1952년에 열린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 육상에 나서지만 누구도 메달을 못 땄다. 이들은 낙담해 숙였던 고개를 들자마자 곧장 ‘1마일(약 1.6km) 4분 장벽’을 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육상계에선 누구도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브루투스 해밀턴이라는 육상 코치는 “인간 한계는 4분 1초 6”이라고 못 박기도 했다.

이 책은 1952년부터 2년간 이들 세 젊은이가 타인과의 경쟁, 시간과의 싸움을 넘어 수도사처럼 자기를 이기고 인내의 극한까지 갔던 과정을 박진감 있게 써 내려간 정통 논픽션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반세기 전의 신문과 인터뷰 테이프 속에서 18개월간 파묻혀 살았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그려낸 것은 치열하되 아름다운 경쟁에 나선 세 젊은이다.

미국 캔자스의 농장에서 자란 산티는 거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고 큰돈을 벌기 위해 달리기를 택했다.

속이 깊은 랜디는 호주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원래 운동신경이 뛰어났으며 자기 수양 삼아 달리기에 빠져들었다. 그는 기록들을 뛰어넘으면서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의대를 다니고 있던 배니스터는 ‘정신과 육체를 함께 기르는 젠틀맨’의 이상에 다다르려고 임상 수련과 달리기를 함께 했다. 그는 생리학 실험을 통해 기록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저자는 이들 셋을 둘러싼 당시 스포츠계의 커다란 변화들을 벽화처럼 그려내 면서 이야기를 클라이맥스로 끌고 가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당시 텔레비전이 많이 보급되면서 스포츠 열기는 갈수록 높아주고, 프로 스포츠가 각광 받기 시작했다. 신문 역시 텔레비전에 맞서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들을 싣기 시작했고, 세 젊은이의 경쟁은 언론의 큰 관심거리가 됐다.

배니스터와 랜디가 차례차례 4분 벽을 깨자 그 열기가 달군 솥처럼 뜨거워졌다. 세 사람이 한 트랙에서 달린 1954년 8월 캐나다 밴쿠버 대회 때는 전 세계 1억 명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이 책은 마지막 승부의 아름다운 과정을 마치 기록영화 촬영하듯 정밀하게,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전해 준다.

육상 영웅 에밀 자토페크는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고 말했다. 저자는 마치 “나는 쓴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로 지금까지 1마일 최고기록은 모로코의 히참 엘 구에로가 1999년 세운 3분 43초 13이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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