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북회귀선’…넋을 자유롭게 하는 소설

  • 입력 2004년 12월 3일 16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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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헨리 밀러 지음 정영문 옮김/375쪽·9800원·문학세계사

헨리 밀러의 고전 ‘북회귀선’은 사람의 넋을 자유롭게 하는 소설이다. 성욕이 워낙 거센 욕구이므로 어느 사회에서나 성욕에 대한 통제는 엄격하고 성에 관한 금기들은 많다. 그런 상황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넋을 속박한다. 음란하다고 여겨진 성의 모습들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북회귀선’은 우리를 옥죄는 성의 속박을 단숨에 풀어준다.

1934년 파리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음란하다는 이유로 작가의 조국인 미국에선 오랫동안 금지됐다가 1961년에야 출판되었다. 헨리 밀러 자신의 태도는 “나는 음란(obscenity)에 찬성하고 도색물(pornography)에 반대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음란은 솔직하고, 도색물은 에두른다. 음란은 씻어내는 과정이고, 도색물은 단지 음침함에 보탠다.”

음란의 그런 정화작용이 바로 독자들의 넋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화는 통상적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그것은 더러움을 물로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운 숨결로 발효시킨다. 이 과정은 자주 인용되는 ‘거리의 여인들’에 관한 단락에서 잘 드러난다.

‘제르멘의 생각이 옳다. 그녀는 무지하고 색욕이 넘친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마음과 영혼을 바친다.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창녀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의 미덕이다.’

‘거리의 여인’에 대한 주인공의 따뜻한 눈길과 힘찬 포옹은 모든 더러움을, 그들이 사는 세상의 누추함과 배고픔까지도, 발효시켜 좋은 무엇으로 바꾸었다. 잘 삭은 두엄처럼, 그것은 깨끗하고 냄새가 나지 않고 자양이 많다.

헨리 밀러는 10편이 조금 넘는 장편소설들을 썼는데, 모두 자신의 삶을 소재로 삼은 ‘자전적 소설’들이다. ‘북회귀선’은 그가 1930년대에 파리에서 보낸 삶에 바탕을 두었다. 무명의 소설가가 이국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겪은 일들이 일인칭 화법으로 솔직하게 그려졌다.

그런 삶이 가리키듯, 그는 유난히 동떨어진 작가였다. 기성 질서에 순응하지 못하고, 전통적 가치에 반항하고, 안정된 직장에서 진득하게 일하지 못하고 날품팔이로 연명하면서, 절망적 상황에서 글을 쓰는 보헤미안 작가의 전통적 심상에 그보다 더 잘 맞는 작가도 드물 터이다.

그의 방랑자적 삶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현실을 잘 알았고 허황된 생각을 지니지 않았다. 특히 그는 ‘어리석은 이상주의자들’이 세상을 비참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현실감각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는 얘기다.

요즈음 우리 사회엔 ‘어리석은 이상주의자들’의 목청이 어느 때보다 높다. 심지어 제르멘과 같은 여인들의 생계를 끊는 법까지 만들었다. 그런 법으로 더러움이 씻긴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좋을까. 아니, 얼마나 삭막할까.

지금 우리 사회에선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헨리 밀러는 만년에 현인으로 불렸다. 칼 샤피로는 그를 ‘남근 달린 간디(Gandhi with a penis)’라 불렀다. 이 세상의 더러움을 조금이라도 씻어내는 현인이 되려면, 남자든 여자든, 그에겐 성기가 달려 있어야 한다.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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